함초롬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4학년
프랑스 북부도시 Rouen의 대학병원에서 4주간 노년내과(Geriatrics)실습을 수행하였습니다. 루앙 대학병원은 총 5개의 지역 내 브랜치 병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2개의 병원에서 노년내과를 운영 중입니다. 그 중에서도 13명의 노년내과 전문의가 일하고 있는 샤를르-니콜 병원에서 실습에 참여하였습니다. 실습 내용은 크게 병동 실습, 외래 참관, 노년내과 관련 기관 참관, 이렇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해당 병원에서는 외래 진료 없이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한 병동만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병동 실습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른 브랜치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노년내과 외래 진료 및 노인 보건과 관련된 기관들을 방문할 수 있도록 노년내과 과장님께 요청드린 끝에 아래의 스케줄 표와 같이 한 달 간 실습을 수행하였습니다.
샤를르-니콜병원의 노년내과는 총 30병상의 입원 시설을 운영 중입니다. 주로 낙상, 심부전, 섬망으로 급성기 증상을 보이는 75세 이상 노인 환자들이 평균 7~9일간 머물면서 치료 받고 있었습니다.
1주차 | 2주차 | 3주차 | 4주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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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 병동 실습 | 병동 실습 | 외래 참관 | 병동 실습 |
화 | 병동 실습 | 병원 부속 요양원 참관 | ||
수 | 외래 참관 | 외래 참관 | 병동실습 | |
목 | 병동 실습 | 병동실습 | 아급성기 노인병원 참관 | |
금 | 방문 평가팀 참관 | 기족 주치의 인터뷰 |
해당 병동은 전문의 6명, 전공의 3명, 의대생 6명이 책임지고 있는데 특이할 만한 점은 입원 환자가 처음 들어오는 경우 학생 → 전공의 → 전문의 순으로 세 번에 걸쳐 진료가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먼저 학생들이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기본적인 문진과 신체진찰, ECG 측정을 하고, 보호자 면담 및 가족 주치의와의 전화 통화를 한 이후 상기 정보들을 모아 초진기록지를 작성합니다. 이후 이 기록지를 기반으로 전공의와 학생이 다시 한 번 환자를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전문의 선생님이 전공의, 학생과 함께 환자를 재방문합니다. 환자를 문진하고 신체진찰하며, 전공의, 전문의 선생님과 함께 3번에 걸쳐 환자를 방문하면서 학생들은 실제 임상 진료에 참여하고, 부족한 의학 지식 뿐 아니라 환자-보호자와의 관계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매일 받게 됩니다. 저 또한 다른 학생들과 동일하게 하루 1~2명의 입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하고 심음 청진, 호흡음 청진, 복부 촉진 등의 신체 진찰을 수행하였으며, ECG를 측정하여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인 환자들의 주요 입원 원인들과 그 특징들, 중요하게 확인해야 할 점들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병동 실습 외에도 일주일에 한 번 진행되는 노년내과 수업에 참관하여 노인 환자와 관련된 의학 지식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노인들의 낙상, 인지기능 저하, 영양 불량, 섬망 등의 주제에 대해 전문의 선생님들께서 매주 한 시간 반 가량 수업하셨으며, 수업 중간에는 실제 입원 환자들의 케이스를 다른 의대생들과 함께 어떻게 평가, 진단하고, 치료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하면서 배운 내용을 적용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전문 분과들과는 달리 노인 환자들의 질병은 상태 전반을 평가하고, 다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병동에 입원 중인 대부분의 노인 환자들이 여러 원인들이 관여하여 기능을 감퇴시키는 노인 증후군을 보이고 있었으며, 치매, 섬망, 청각 및 시각 장애, 근감소증, 영양불량, 보행 장애 등을 복합적으로 앓고 있는 이런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 과거력과 복용약을 아울러서 평가하고 치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노년내과적인 접근 방식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노년내과 병동의 목표는 급성기 증상의 치료 뿐 아니라 퇴원 후 기능 회복 및 삶의 질 재고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위해 병동 내에 의사, 간호사 외에도 요양보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영양사, 사회복지사가 상주하며 협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년내과의 코디네이션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배우고자 매주 수요일 병동 내의 모든 의료인력들이 모여 개별 환자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에 참관하였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만이 모여 의료적인 평가와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는 월요일 회의와는 다르게 수요일 회의는 환자 주변의 모든 스탭들이 모인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의사보다 더 오래 환자 곁에 머물게 되는 전 스탭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건강 뿐 아니라 감정 상태, 걸음걸이, 영양. 가족 관계 및 재정 상태 등에 대해 논의하고 퇴원 후 어떤 지원이 필요한 지에 대한 방향을 함께 모색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환자 상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이 회의 뿐만 아니라 노년내과 산하의 '방문 평가팀(mobile geriatrics team)'을 하루동안 쫓아다니면서 다른 분과와의 코디네이션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심장내과, 정형외과 등 다른 전문 분과에서 노년 환자에 대한 평가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 주로 어떤 경우에 의뢰가 들어오고, 어떤 방식으로 협진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배우며 노년내과의 역할 및 병원 내의 포지셔닝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병동 실습 외에도 3일 동안 매일 다른 외래에 참관하였습니다. 노년내과의 외래는 일반적인 대학병원과는 조금 다른 ‘일일 병원(Geriatrics Day Hospital)'이라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일일병원은 인지 기능 저하, 낙상, 노인 암, 노인 정형 등의 노인과 관련된 외래 진료를 여러 전문 분과를 순회하지 않고도 같은 공간에서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외래 형태입니다. 노년내과 전문의가 자신의 세부 전공에 맞추어 의료팀과 함께 한 환자당 2~3시간에 걸쳐 평가, 치료 계획을 수립합니다.
제가 참관했던 외래는 인지기능저하, 낙상, 수술 전 평가 이렇게 세 분야였습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세 분야 모두에서 외래 진료가 팀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낙상 외래의 경우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발 관리사 5명이 팀이 되어 움직입니다.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를 진료하기에 앞서 먼저 간호사가 환자의 현재 상태와, 기능적인 평가를 한 다음 다른 세 명이 환자의 자세, 걸음, 집의 상태 등을 평가합니다. 이후 모두 모여 환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3-5가지 정도로 요약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현재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향후 치료 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식으로 진료가 진행됩니다. 환자가 여러 전문 분과들을 돌지 않아도 노년 내과의 외래에서 종합적인 진단을 받을 수 있고, 팀 단위의 외래 진료의 중심에서 의사가 코디네이션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을 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노년내과 급성기 병동의 재원 일수는 평균 7~9일로 위급한 증상이 어느 정도 갈무리 된 이후에 환자들은 다른 기관으로 전원 또는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노인 환자들은 급성기 증상이 해결된 이후에도 재활을 요하거나, 여러 만성 질환들로 인해 생활이 독립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퇴원 이후에 이와 연계된 다른 의료 기관들을 필요로 합니다. 퇴원 전후 절차와 단계별 노인 의료시설의 현황을 관찰하기 위해 노년내과 연관 기관인 아급성 노인병원과 병원 부속 노인 요양원에 방문하였습니다.
먼저 퇴원 이후 가장 많은 환자들이 향하는 아급성기 노인병원을 하루 동안 참관하였습니다. 평균 재원기간이 3~4개월이라는 이 병원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노인 환자들의 재활 및 일상기능 회복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1층에 큰 규모의 물리치료실과 작업치료실을 두어 신체기능 회복과 일상생활로 돌아갔을 때 거동, 요리, 화단 가꾸기 등의 기능 회복을 돕고 있었습니다. 급성기 증상에서는 회복되었으나 혼자 집에서 생활할 수도, 그렇다고 병동에 남아 있을 수도 없는 노인 환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형태의 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요양병원과 유사한 형태인 대학병원 부속 요양원에 방문하였습니다. 재원 기간이 최소 반 년에서 최대 이십년 이상인 요양원은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요양병원과 유사한 형태입니다. 차이점은 상주하는 의사가 노년내과 전문의이라는 점과 요양원 입소 전에 환자 및 보호자와의 한 시간여의 면담을 통해 환자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한다는 점,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영양사 등의 주변의료인들과 주기적으로 협력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의사 한 명당 맡은 환자 수가 100여명에 달했기 때문에 간호사와 요양 보호사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습니다. 하루 동안 노년내과 전문의 선생님의 회진을 참관하고 발 관리사 분의 업무를 관찰하면서 프랑스 사회가 직면한 노년 인구 보건 관리 문제와 프랑스 보건의료제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4주간의 실습을 통해 배운 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의대생들이 의료 업무에 투입되어 일하는 대학병원에서 실습하면서 실제로 내가 의사라면 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고, 환자의 병명에 대해 진단해보며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실습이 보다 넓은 범위의 질병들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과정이었다면 프랑스에서의 실습은 환자를 대면하는 과정에서 해야 할 말과 제스처부터 시작하여 질병 평가를 위해 사용하는 기준 등 보다 실제적인 과정들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입원하는 환자들이 보이는 증상의 원인과 노인환자들이 주로 보이는 질병에 대해 함께 일하는 전공의 선생님들과 전문의 선생님들께 여쭤보고, 필요한 부분들은 집에 와서 찾아보며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는 매일이 충만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능동적인 실습을 한국에서도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해보았습니다.
두 번째로 실습을 통해 이상적인 노년내과 의사의 역할 및 자질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전문 분과에서 의사는 간호사 및 여러 주변 의료 인력들과 함께 일하지만, 특히 노년내과는 치료를 위해 삶 전반을 평가해야한다는 점에서 팀 단위의 업무와 다른 의료 인력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조율하는 코디네이터가 바로 의사이기에 소통 능력은 꼭 필요한 자질 중에 하나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노인 환자에 대한 전문적인 의료 지식은 충분히 갖추되, 다른 팀원들이 환자에 대해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잘 들으려는 자세와 환자에 대한 내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소통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실습을 통해 프랑스의 노인 의료체계가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19% 로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있는 프랑스 역시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증가하는 노인 의료비와 부족한 노인 전문 인력과 의료 시설로 인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프랑스는 가족주치의와 협력하여 환자를 잘 아는 의사가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며, 방문 간호사 제도, 방문 알츠하이머 팀 등을 활용하여 최대한 노인환자들이 집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2017년부터 전국적으로 노년내과 전공의를 선발함으로써 노인환자들이 여러 전문 분과를 순회하지 않고도 통합적으로 진료받을 수 있도록 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습을 통해 프랑스의 제도적인 노력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우리 노인보건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노년내과 전문의 양성, 가족 주치의 중심, 지역 사회 의료 중심이라는 방향성이 우리의 보건제도와 어떻게 접목 될 수 있는지를 한국에서 더 공부해보고, 더 찾아다니며 배우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