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클리닉(이하 라파엘)의 태동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얘기가 있다. 바로 ´카레´다.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1996년 봄 어느 날, 필자는 광주에 가는 기차에 올랐다.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파키스탄 사형수 두 명을 면회하러 가는 길이었다. 사형수들은 1992년 경기도 성남에서 발생한 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4년째 갇혀 있는 중이었다. 이들은 ´결백하다´고 곳곳에 편지를 보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당시 대통령에게 재수사를 요청해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는 중이었다. 내려가며 무얼 가져갈까 생각하다가 ´파키스탄 사람이니까 카레를 먹고 싶겠지´라는 생각에 카레를 끓였다. 막상 도착해보니 음식물 반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식은 카레는 도로 가져와야 했다. 이 얘기를 들은 동료들로부터는 ´요리도 못하면서 카레는 왜 만들어 갔느냐´는 놀림을 들었다. 이 사건은 그 당시 22만 명이나 되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내가 가진 것으로 무얼 나누어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내게 그건 결국 ´의료나눔´이었다. 무료진료소 라파엘클리닉의 시작은 그렇게 카레로 인한 에피소드에서 싹을 틔웠다.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무료진료소를 열겠다고 했을 때 선뜻 참여를 약속한 분은 김전 교수님(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과 가톨릭학생회 동아리 학생 4명뿐이었다. 첫 진료 하루 전날, 나누어 줄 약 한 병도 없이 처방전을 준비하던 우리에게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약품을 충분히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밀려드는 환자로 진료소가 좁아져 이사 갈 공간이 절실했을 때에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정과 동성고등학교 강당 복도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IMF의 한파가 밀려온 겨울부터는 곳곳에서 후원이 시작됐다.
아파도 갈 곳 없는 환자가 밀려올수록 동료 의료인들의 참여와 의료물품 기증이 늘어났다. 불과 1년 후 라파엘 클리닉은 17개의 진료과를 갖춘 강당 복도 진료소가 되어 있었다. 작은 나눔이 가져온 기적이었다.
안규리, 서울대학교병원 신장내과
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