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1): 이기적인 의사

의대생 신문과 함께하는 의대생 글쓰기 공모전 당선작

우수상(1) 이동제 건양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 제목: 이기적인 의사

나는 사갈과 같이 살고 있다.
복장뼈 아래께, 왼쪽 갈비뼈 사이 어딘가에 살고 있는 이것은 호시탐탐 틈을 엿보며 꽈리마냥 비틀린 악취를 풍기는 생각과 말을 가래침처럼 흩뿌린다. 이놈은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일이 없어 신랄한 비판으로 나를 잠식하며 뿌듯해하는데, 얼마나 교묘한지 나를 수없이 곤경에 빠뜨린다.

대학 입학 면접 질문으로 이기심과 이타심이 무엇인지, 자신이 그 중 어떠한 유형의 의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설명하라는 질문이 나온 적이 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와 닿지 않게 꼬부랑 언어로 발표하라는 지에 대한 이유는 차치하고, 듣자마자 사갈놈의 몸이 달아 지껄여댔다. 이기고 이타는 무슨. 사람이 그렇게 자로 재고 긋듯이 동쪽은 착한 놈, 서쪽은 나쁜 놈으로 나눌 수 있나? 나한테 잘해주면 저 사람은 이타적이고, 아니면 이기적인 게 아니겠나. 뿐만 아니라, 이타적인 사람이 남을 돕는 이유는 자기만족인 것이다. 도와주는 나의 모습이 대단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얻고, 사회적인 평판도 올릴 수 있거든! 손익을 이렇게 매달아 보면, 평행 추의 한쪽에 손해를 충분히 상쇄하는 이득이 있으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틀림 없었다. 나보다는 물론 남이 중요하지요, 저는 이타적인 사람이에요, 하는 진부한 대답을 하기에는 또 심사가 뒤틀렸기 때문에, 결국 나는 노회한 교수들의 면전에 대고 이타주의는 넓은 범위의 이기주의라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말인즉슨, 심리적인 보상이 있기 때문에 완전한 이타주의는 있을 수 없고 나한테 이타주의가 도움이 된다면 궁극적으로 그건 이기주의란 것이 나의 헛소리의 요지였다. 덧붙여, 내가 의사가 된다면 남을 도우면서 행복을 느끼는 수준 높은 이기주의를 함양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물론 교수들은 나의 대답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내 고상한 이기주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추가 합격을 받아 겨우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 목표는 이기적인 의사였던 셈이다.

문득 문득 치밀어 오르는 비틀린 심사에도 불구하고 대학 생활은 별다를 것 없이 흘러갔다. 남들 다 하듯 해부학이 힘드니, 이번 시험은 망했느니 하다가 본과 3학년이 되었고, 가운 안에 잘 다린 정장을 받쳐입은 흉내내기 의사가 되어 병원에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담당 교수님이 학생의사가 궁금한 것이 없으면 실습을 열심히 안 하는 것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기 때문에, 내 비루한 지식 속 호기심거리를 찾으러 열심히 병동을 들락거렸다.

병동에는 오랜 B형 간염과 음주로 인해 돌처럼 딱딱해진 간과 종양덩이를 가지고 있는 환자가 한 명 있었다. 그에게 삶은 쉽지 않아 보였다. 아내는 젊은 날 그를 떠나갔고, 그의 침상 머리맡에서 인기척을 내는 사람은 가끔 상태를 확인해주는 간호사뿐이었다. 하나뿐인 형제가 그를 보고 돌아가는 날이면, 그는 어김없이 배를 눌러보는 나의 손을 붙잡았다. 좀 살려달라고, 이제 술도 안 먹고 착하게 살 자신이 있다며 나를 보는 흑색 얼굴과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경험과 지식이 일천한 학생의사로서는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지는 것이었다.

그날도 그의 배를 이리저리 흔들어 복수를 확인하는데, 그가 물어왔다. "시체 기증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내가 당황스러워 보였는지, 아니면 동의서를 받아야 진행 할 수 있다는 내 설명이 너무 삭막했는지 그는 그런 것을 물어본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왜, 선생님도 해부 해봤으니까 알 것 아니에요.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내 인생이 그렇게나마 의미 있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황한 나는 어김없이 눈을 피하며 대단하며 숭고한 일이라고, 그거야말로 더없이 이타적인 행동일 것이라고 얼버무리고 병실을 도망가듯 빠져 나왔다.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가는데 사갈이 또 들썩댔다. 환자 말마따나, 나도 해부를 해보지 않았나. 차가운 테이블 위에 예수처럼 벌거벗은 그를 나는 숭고하고 대단한 주체로 대했던가. 그의 몸을 닦아 드리고 생명을 살리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마지막 말을 들었으면서, 몇 개월 간 그의 살거죽을 잘라왔음에도 나는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몰이치는 부끄러움에 익사할 지경이었다. 병동의 환자는 가까워오는 끝을 생각하며 절망했을 것이 분명했다. 여러 날 고민 끝에 가까스로 찾아낸 의미 있는 마무리에 대한 무거운 질문에, 그 행위의 숭고함에 대한 생각이라곤 해보지도 않은 내가 뱉은 가볍기 하릴없는 답변을 들으면서 그는 어떠한 생각이 들었을까. 이타적인 행동이 곧 나의 기쁨이 되는 고상한 이기주의를 행하는 의사가 되겠다며 젠체하며 뻐겨댄 주제에, 나의 의학은 이기도, 이타도 아니고, 아무도 이롭게 하지 못하는 무관심에 불과했다.

이제 다시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의사가 되고자 하느냐 묻는다면, 나는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번쩍거리는 이상을 내세우기에는 나의 낯이 그렇게 두껍지 않은 탓이다. 단지 사람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가슴 답답하고 진중한 문제를 토로할 때 얼버무리며 도망가지 않고, 생각 없는 나의 삶에 대해 내 가슴속 사갈이 비판하면, 그것에 대해 반성하고 후회하는 것에는 어떤 의사가 아니라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기니 이타니, 이런 것을 생각할 바에는 한 명이라도 이롭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지표로 삼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