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2): 나는 또 다시 학교를 자퇴했다.

의대생 신문과 함께하는 의대생 글쓰기 공모전 당선작

우수상(2) 이승민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본과1학년 제목: 나는 또 다시 학교를 자퇴했다.

0. 나는
어릴 땐 달리기가 빠르니 경찰이 되어 도둑을 많이 잡겠다고 했었고 조금 머리가 큰 뒤론 ‘더글러스처럼’ 세상을 바꾸는 정치인이 되어서 누군가의 꿈이 되고 싶었고 ´존 존스 같은´ 슈퍼루키가 되어 격투기 불모지인 한국의 뉴스를 장식하고도 싶었고 고등학생이 된 뒤론 ´신승범처럼´ 유명스타강사가 된 후 EBS에서 무료강의를 하며 교육평등을 이뤄냈다고 외치고 싶었다.

1. 속물들의 세계
의대를 다니고 있는 누구 하나 그렇지 않은 이 없겠지만, 고등학교 재학 중 내신, 모의고사에서 만점, 전국1등을 놓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받아왔고 그것에 내 삶의 가치를 전부 가둬 넣었었다. 그렇지만 의대에 진학하라는 주변 친척 어른들, 학교 선생님, 부모님의 말에도 나는 절대 의대가 아닌 사범대에 진학하겠다고 늘 말해왔었다. 주변에 의대를 희망하는 친구들이 전부 다 돈을 보고 의대를 바라봤기에, 나에게 의대진학이란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강한 포부와 고결한 의식도 없고 그저 아무생각 없이 돈만 밝히는 속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높은 성적과 무관하게 의대가 아닌 사범대에 진학해 세상을 바꿀만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의대는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가장 혐오스런 속물들의 세계였다.

2. 첫 번째 자퇴
그러던 중 열일곱 살의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던 일들이 찾아왔다. 어릴 적부터 흔한 부부싸움조차 한번 없을 정도로 화목한 집에서 자라왔던 나에게, 어머니의 외도와 아버지의 폭력으로 평화가 무너진 가정은 그 나이의 나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예지몽까지 반복되며 극도의 정신적 불안감과 두려움에 시달리던 나는 문 앞에서 서성이며 집에 들어가지 못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결국 편의점 테이블에서 라면조미료 향에 절어 잠을 자며 학교를 다녔고 애써 멀쩡한 척 해봤지만 당연히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2주일이 흐른 뒤 무성한 소문에 휩싸인 채 전교1등 우등생은 자퇴생이 되었다.

3. 자퇴생으로 산다는 것
나는 철저하게 삶의 의미를 찾았다기보다는 존재의 의미를 찾았던 것 같다. 그 의미를 찾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었다. 자퇴생이라는 꼬리표와 사회의 손가락질엔 관심을 가져줄 여유조차 없었다. 끝없이 고민했고 방황은 계속됐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시시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바닥까지 경험했고 정신과를 찾았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등져버린 세상이 아닌 내가 안을 수 있는 세상이 필요했다. 여섯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모든 것이 회복되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기간 동안 존재의 의미를 찾았고 앞으로 위기 청소년들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일상을 돌려주는 정신과의사가 되겠다는 삶의 의미도 찾게 됐다. 그리고 어렵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크진 않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처럼´이 아닌 내가 나 자신이 되는 꿈을 찾았다.

4. 태풍이 지나간 자리
그것도 잠시였다. 오랜 공백 후에 학업으로 돌아온 나는 좀처럼 전과 같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끝까지 매달렸지만 결국 대학에 떨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처럼´이 아닌, 그것도 그토록 어렵게 생겼던 꿈은 나에게 실현할 기회도 절대로 쉽게 주지 않았다. 꿈을 바라보며 공부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어도 견뎌냈다. 난 꿈이 있으니까. 재수생으로서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나는 의대합격증을 받아냈다.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열었다는 기분이었다.

5. 상처가 낫는다는 것
하지만 기분이 묘했다. 합격의 기쁨 이후 나는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그토록 내가 원했던 길인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내가 꿈을 이루겠다며 달렸던 시간은 아무생각도 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주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달려가는 동안 난 내 꿈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 시간은 내게 꿈을 갖게 했던 나의 아픈 상처를 점점 잊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 같다. 꿈이 희석됐다. 어떤 마음으로 그런 꿈을 꿨는지 얼마나 간절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내 꿈을 부끄럽지 않게 마주할 수 없었다. 그렇게 꿈과 멀어졌다. 나는 예전처럼 그토록 정신과 의사를 갈망하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6. 두 번째 자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무엇이 나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가? 머릿속이 한 없이 복잡해졌다. 이 길은 내가 가야 할 길이 맞는 것일까? 나는 어떤 의사로서 살아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들은 갈기갈기 찢어져 머릿속에 흩뿌려져 있을 뿐이었다. 눈앞에 당장 보이는 것이나 내가 이뤄야 할 것, 앞으로 의대를 다니면서 내가 가져야 할 의미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의대를 자퇴했다.

7. 취한 채 살아간 날들
처음에는 꿈을 잃은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라도 바쁘게 살았다. 택배상하차, 클럽가드, 콜센터, 레스토랑주방, 휴대폰판매점 등 정신없는 날들이 시작됐다. 자그마한 사업을 시작했고 5명이었던 직원은 40명이 넘는 회사가 됐다. 뿌듯했다. 20대 초반에 달마다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벌었고,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차를 탔고 좋은 것을 먹었고 좋은 대접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성공했다는 주변의 칭찬에 점점 취해갔다. 부모님께 기대며 대학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들을 무시하고 다름을 느끼는 것은 내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그렇게 나는 참 어린 나이에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한껏 맛보며 점차 건방져졌다.

8. 진정한 속물
나름대로 이룬 것도 많았고 부러울 것도 없었던 날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창 중 한 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동창들이 모이게 됐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던 날이었다. 그 중 남녀분반이라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던 여자 동창은 내 이야기에 크게 놀라며 믿지 못하겠단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생각 없이 고등학교 다닐 때 니가 의사 될 거라고 할 때마다 진짜 사람 눈이 저렇게 반짝거리면서 당당할 수 있구나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안 아쉬워?"
"어릴 때 이야기지 뭐, 의사되는 것보다 지금이 더 나아. 의사돼봐야 얼마나 번다고."
"응? 넌 의사가 돈을 많이 벌어서 오히려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인정 못 받는 것 같다고 했었잖아. 그래서 지금은 뭐가 되고 싶은 건데?"
"......"

친구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당황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글에서 읽었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다. 그동안 회사의 크기, 벌어들이는 액수에 대한 욕심만 커져갈 뿐 나라는 사람은 하나도 성장하지 못했다. 꿈이 있는 친구들을 어린애 취급하면서 어른이 된 척 건방지게 굴던 사람, 내가 꿈이 있던 시절 그토록 혐오했던 아무생각 없이 돈만 좇는 속물, 그게 바로 지금의 나였다.

9.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가장 혐오하던 사람을 내 자신에게서 발견했을 때의 혼란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작아지고 시시해질 수 있는지를 겪고 난 뒤에서야 다시금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었다. 고민을 하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순수하게 꿈을 이루고 싶었던 마음, 꿈을 잃어버렸던 시절, 그걸 잊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내가 가장 한심해했던 어른이 된 나를 되돌아보면서 다시금 꿈을 꾸고 싶었다. 슬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꿈을 꾸던 시절로 돌아가려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때처럼의 간절함은 아니었지만 20대 중반, 한껏 건방졌던 때의 내가 무시했었던 친구들이 꿈을 이뤄갈 즈음, 난 다시 의대에 입학했다.

10. 흔들리는 의사
그렇게 지금 다니는 학교에 오게 되었다. 물론 그 예전의 순간과 완전히 같은 마음일 수는 없기에 흔들리는 순간도, 다시 한 번 자퇴서류를 학교에 낸 적도 있었다. 바빠지는 생활 속에서 꿈이 희석됐던 예전과 같이 또 다시 아무생각 없이 살아가는 날들도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날들이 수도 없이 반복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보다는 그럴 것이다가 더 솔직한 이야기인 것 같다.

의사가 되고 난 후에도 나는 아마 꿈이 흐려지고 학교를 자퇴했던 시절과 같이 흔들리며 살아갈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렇지만 그 어느 순간 또 다시 방황하고 흔들리더라도, 나는 그때의 꿈을 잊지 않고 다시 붙잡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