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3): 죽음의 그늘에서 시작된 꿈

의대생 신문과 함께하는 의대생 글쓰기 공모전 당선작

우수상(3) 전혜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과 1학년 제목: 죽음의 그늘에서 시작된 꿈

죽어버리자. 지금 당장.

1년 전, 고등학교 삼학년 이었던 내가 수십 번의 논리적인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의 늪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기숙사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내신 등수도 중상위권에 속했고 모의고사는 더 잘 나왔다. 하지만 주변의 명석한 친구들에 비해 특출난 과목 하나 없었고,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무언가도 없었다. 재능도 흥미도 없는 내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절망이 깊었다. 굶어죽지는 않겠지 생각하면서도, 단순히 벌어 먹고살기 위한 삶을 지속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굳이 미천한 생명을 연장시킬 바에야 고통받지 않을 수 있게 빨리 생을 마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작년 5월부터 수능 전까지, 반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세 번 옥상에 올라갔고, 두 번 차도에 뛰어들 뻔했고, 한 번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샀다. 청룡열차조차 무서워서 타지 못하는 나는 옥상 난간에 서지도 못하고 바닥에 붙어 거의 기어가듯이 있었다. 빨간 대형버스 앞에 뛰어들까 하다가도 괜히 버스 기사님 걱정을 하는 척 그만두었다. 약국에서 수면제를 팔지 않길래 수면 유도제를 한 통 사서는, 고작 두 알 먹고 다음날 아침에 개운하게 깨어났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는 죽을 용기조차 없구나. 무섭구나. 다른 이유는 핑계에 불과했다. 결국 나는 진정으로 죽는다는 게, 다음 날 아침에 아무렇지 않게 익숙한 풍경을 맞이하지 못한다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정신이 피폐해지던 수험생활 와중 존경하던 수학 선생님께서 삶에는 당위성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살 이유를 느끼지 못해도, 당연히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셨다. 몇 번이나 죽음을 결심했다가 실행에 옮기기를 실패한 뒤에, 나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 다음 내 주된 과제는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었다.

작년, 극도의 무력감과 우울에 시달리던 시기에는 정신과 의사가 되어 나와 같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수능이 끝나고, 정시로 의대에 합격하고 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먼저 작년 엄마와 함께 갔었던, 용인의 모 정신과를 떠올렸다. 내 증상을 설명하고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를 받아온 뒤 나는 한 번도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고작 약 몇 알이 나를 낫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분개했기 때문이었다. 어린 치기일 수도 있지만 내 고민이 약물로 해결되길 바라지 않았고, 약을 먹어 억지로 활력을 찾느니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정신과 의사가 된다 해도 환자들에게 약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니 결국 정신과 의사의 역할은 당장 항우울제를 처방해 호르몬을 조절하고, 우울의 원인이 되는 무언가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닥 끌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또 생각했다. 어떤 일이 내 기준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일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외과 의사가 되어 사람을 살리고 싶기도 했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서 있는 환자들의 생명을 다시 찾아주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또 없을 것 같았다. 골든 타임, 코드 블랙 등 의학 드라마를 보면서 외과 의사에 대한 마음은 커져만 갔다. 수술실에서 매스를 외치며 꺼져 가는 생명의 불씨를 되살리는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충분히 깊은 고민을 거치지 않고 쉽게 답을 찾은 점이 불만이었다. 찜찜한 구석을 붙들고 외과의사를 꿈꾸던 와중에 번개처럼 어떤 생각이 머리를 쳤다.

나는 항상 스포츠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농구를 하다가 손가락을 세 번이나 부러뜨렸고, 중학교 때 방과후 여자축구반에 들었던 경험을 기점으로 고등학교 때 여자축구 동아리의 주장까지 했었다. 대학에 와서는 의대 테니스 동아리, 그리고 마라톤 동아리를 하고 있다. 또 지금 꾸준히 사격장을 다니며 공기권총 사격도 연습하고 있다. 뛸 때 나오는 에너지, 골이 들어갈 때의 쾌감, 잘 풀리지 않을 때의 마인드컨트롤 등 스포츠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들이 나를 매료시켰고, 내 인생에서 스포츠를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로 만들었다.

이는 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하면 어떨까, 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진천선수촌에서 팀 닥터로 일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 부상을 극복하고 재기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 또 스포츠를 취미로 즐기는 생활체육인들을 위해 스포츠의학 전문 병원을 설립하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일반인들 대상으로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해야 다치지 않고 즐길 수 있는지 강연도 하고, 선수 개인 맞춤형으로 체계화되고 세밀한 진료와 관리를 통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

처음으로 가진, 오랜 치열한 고민 끝에 쟁취한 꿈은 소중하다. 보송보송한 아기를 처음 받아 안아들 때의, 어쩔 줄 모르겠는 기분이다. 하지만 꿈은 액체와 같아서 여러 가지 물질을 용해시킬 수 있고, 담는 그릇에 따라 형태가 바뀐다. 다른 말로, 나의 꿈은 하나가 아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수필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사격을 계속 해서 사격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또한 열정만으로 모든 게 가능하지 않기에, 꿈을 담는 그릇이 무엇이 되든 상관없다. 성적이나 다른 요소에 의해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되지 못하더라도, 다른 과를 전공해 팀 닥터가 될 것이다. 결국 그릇은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 들어있는 액체의 본질이 중요하다. 나의 다양한 목표는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된다. 나는 내가, 남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