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학교육의 역사를 다룬 두 권의 책

미국 의학교육의 역사를 다룬 두 권의 책

신 좌 섭
KAMC 전문위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신좌섭 KAMC 전문위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Kenneth M. Ludmerer, Learning to Heal

The Development of American Medical Education.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5.

Kenneth M. Ludmerer, Time to Heal

American Medical Education from
the Turn of the Century to the Era of Managed Care.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일제강점기 일본 의학교육과 해방 후 미국 의학교육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일본의학교육의 영향은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역사적 유산이란 그렇게 쉽게 털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학교육의 영향은 ´강의 중심 교육, 교실 간의 높은 장벽´ 등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미국의학교육의 영향은 현재 진행형이고 더욱 강력하다. 50년대 말 도입된 Clinical Clerkship, 인턴제도, 전공의 수련제도, 60년대 교육목적의 Clinco-Pathology Conference, 70년대 통합교육, 90년대 PBL, 2000년대 임상표현교육과 성과바탕교육 등이 그 예이다. 한국의학교육의 독자적 발전이 어느 시기부터인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지만, 아쉽게도 한국 의학교육은 여전히 미국 의학교육의 영향 아래에 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였다. 의학교육의 역사도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우리가 의학교육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의사집단과 사회의 관계 변화, 대학과 병원의 관계 변화, 의학교육의 비용, 학생선발, 교육과정의 변화, 인턴·레지던트 제도의 변화 등 오늘날 의학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통찰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 의학교육의 변천사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한국 의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 의학교육의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룬 두 권의 책 ´Learning to Heal´과 ´Time to Heal´을 저술한 Kenneth M. Ludmerer는 존스홉킨스에서 의학을 공부하였고 현재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의 의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Ludmerer는 위 두 권의 책 외에도 미국 유전학의 역사를 다룬 ´Genetics and American Society: A Historical Appraisal(1972)´, 미국 레지던트 교육의 역사를 다룬 ´Let Me Heal: The Opportunity to Preserve Excellence in American Medicine(2014)´의 저자이기도 하다.

´Learning to Heal´은 19세기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미국의학교육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Time to Heal´은 20세기 초반부터 20세기말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는데 Ludmerer는 이 책들이 미국의학교육에 미친 영향을 인정받아 2003년 미국의과대학협회(Association of American Medical Colleges)로부터 ´Abraham Flexner Award´를 받았다.

두 권의 책은 의학교육의 변화를 교육학의 발전, 의료전문직의 사회적 위상변화, 의과대학의 변화, 대학과 병원의 관계, 테크놀로지 발전 등과의 관계 속에서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제시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의학교육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큰 그림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2년 전 두 권의 책으로 의학교육학 대학원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 의사출신인 10여명의 수강생들은 한 학기를 정말로 흥미진진하게 즐겼다. 미국 의학교육의 역사적 흐름이 우리와 많이 다르면서도 매우 흡사한 면모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두 권의 책을 정독하면 의학교육과 관련하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신선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인턴제 폐지와 관련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인턴제도는 1950년대 미국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는데, 정작 미국에서는 1975년에 폐지되었지만 우리는 아직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인턴제도는 1920년대부터 각 병원에서 부분적으로 시행되다가 50년대 말 보편화되었으나, 1970년대 중반에 폐지되었다. 폐지에는 의대 임상실습의 강화, 레지던트 수련과정의 체계화, 그리고 졸업생 대부분이 레지던트 수련을 선택하게 된 시대적 상황이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우리는 사실 당위성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인턴제 폐지 논의를 시작했지만, 미국에서는 강화된 의대 임상교육과 체계화된 레지던트 교육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눌려 자연스럽게 폐지된 것이다. 이로부터 인턴제 폐지의 선결조건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올 여름 휴가철에는 미국 의학교육의 역사에 한번 푹 빠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 휴가철 전에 가라앉기만을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