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재 석
KAMC 홍보이사,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장
지난 10여 년간 우리나라의 의학교육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의학교육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를 이끈 중요한 요인으로 의학교육 평가인증제의 정착, 의사국가시험의 실기시험 도입, 의학전문대학원 체제의 도입 등을 드는 데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동안 의학교육에 일어난 변화들은 대부분 의학교육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우리나라 의학과 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학 운영 책임자의 입장에서는 그 동안의 여러 변화들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최근 우리가 이룬 의학교육 제도와 환경의 변화는 대부분이 많은 인적, 재정적 자원의 투입이 필요한 사항들이었기 때문이다.
교수 개인 강좌 혹은 교실별 교과목으로 운영되던 강의가 대부분 통합교과목 강의 체제로 전환되면서 대학 집행부에게 강의와 평가 관리의 부담이 크게 증가하였다. 소그룹 학습과 임상술기 평가 등 대규모 교수 동원이 필요한 교육 활동도 현저하게 증가하여 이 또한 대학 집행부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임상술기 교육과 평가를 위한 시설과 기자재, 문항 출제 관리, 컨소시움 활동, 표준화환자 관리 등 교육 재정의 투입이 필요한 교육 활동도 예전에 비해 엄청난 규모로 증가하였다.
교육활동에 필요한 교수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고 교육 전담 부서와 전문 교수 및 지원 인력을 확보할 수 있으며, 필요한 만큼 교육 재정을 투입할 수 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겠으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국립, 사립을 불문하고 이러한 여건을 갖춘 대학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국립의대의 경우 2006년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하면서 학장들이 서로 협의하여 기성회비 인상분의 50%를 의학교육 재정에 투자할 수 있도록 의과대학 정규 예산에 증액 편성하여 줄 것을 각 소속 대학교 본부에 요구하였으나 대부분의 대학에서 이를 실현하지 못하였다. 부산대학의 경우도 정규 예산 증액 편성은 실패하고 특수 목적 사업비의 형태로 (초기에는 ‘의학전문대학원 체제 정착비’, 최근에는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 대비 기자재 구입비’ 등의 명목) 지원을 받아왔으나 그 지원 규모가 점차 감소하여 최근에는 사업비 편성 자체가 어려워질 상황이다. 매년 사업비 증액을 요구해보지만 다른 단과대학과의 형평성, 등록금 대비 교육비용 과다 등의 이유로 거부당하였다. 올해부터는 기성회계의 폐지와 대학재정 여건의 악화로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부분의 국립대학들이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과대학 체제로 돌아가면 등록금을 현 수준보다 낮추어 책정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인데 이 경우 대학 예산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국립, 사립 구별 없이 재정 여건이 좋은 몇몇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들이 동일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의학교육 제도와 환경을 유지하는 데만도 교육재정의 투자를 더 늘려가야 함에도 앞으로 현 수준의 교육재정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 예상된다. 의학교육 재정의 확보는 아무래도 대학 예산에 크게 기댈 수밖에 없으나 현 시점에서 대학병원과 정부에도 일정 부분 책임 분담을 요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의사국가시험에 실기시험이 도입된 2008년 이후 각 대학들은 실기시험 대비를 위한 시설 확보와 교육을 위해 초기에 많은 재정 투입을 하였고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정 수요도 각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들이 개별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정부에서 어떠한 재정 지원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민 보건을 책임지는 의사 양성과 배출 제도를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 방식으로 바꾸면서 국가에서 어떠한 재정 지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전의 국립대학 실험실습 기자재 확충사업 등의 형태로 의학교육에 필요한 실험실습 기자재 확충을 지원하거나 지역 거점별로 의학교육 술기 교육 시설의 건립 지원, 의학교육 평가사업의 국고 지원 등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의학교육과 관련하여 대학병원은 교육의 주체이기도 하고 그 결과물의 1차 수혜자이기도 하다. 의학교육의 일부를 책임지는 교육병원이면서 교육의 결과물인 의사를 우선적으로 공급받는 의료기관이기도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의학교육 제도 변화에 따라 예전에 교육병원으로서 대학병원이 수행하던 임상술기 교육의 많은 부분을 대학이 책임지게 되었다. 차후 인턴 제도가 폐지된다면 그 정도는 더 커질 것이다. 대개 의과대학 교수들이 병원 경영진에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대학병원이 의학교육에 필요한 재정의 일부를 분담해야 한다는 데에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재정 지원은 병원으로서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의료법인 회계 관련 법령과 규정들이 병원의 교육재정 지원을 어렵게 하는 점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의학교육 재정 지원의 의지도 있고 재원도 있지만 사후 회계감사 지적의 우려 등 때문에 병원 회계업무를 맡은 직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병원장님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KAMC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검토해볼 사항으로 보인다. 대학병원 매출액의 0.1% 정도만이라도 의학교육에 추가 재정 투자를 할 수 있다면 현재의 의학교육 여건은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직접적인 재정 지원이 어렵더라도 임상술기 교육시설을 병원에서 운영하는 등으로 의학교육을 간접 지원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급변하는 의학교육 환경의 변화로 많은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들이 고민하고 있고 그 고민의 중심에는 교육재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그 고민을 각 대학(원)들이 혼자 떠맡기에는 버거운 시점이 되었다. KAMC 차원에서 함께 정책적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