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아닌 사람들´의 역할 분담이 빛난 ´미국´

KAMC 해외연수 장학생 소감문

´의사가 아닌 사람들´의 역할
분담이 빛난 ´미국´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4학년 박민정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안고 인천공항을 나섰던 날이 선한데, 벌써 한 달간의 실습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임상실습을 간 곳은 미국 뉴욕의 Mount Sinai 대학의 St. Luke´s hospital이라는 병원의 ´Clinical management of Obesity´라는 실습과였습니다. 평소 저는 당뇨 및 대사질환, 비만과 관련하여 약물적, 수술적 치료에 대해 관심이 있어 본교에서도 이에 관한 연구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대사질환에 관한 신약개발, 새로운 수술법개발, 병태생리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진료와 연구를 하는지 참관하고 싶었기에 미국 임상실습을 지원하였습니다. 외국학생에게 까다로운 미국병원에서의 실습을 지원하는 데에 본교 국제교류팀의 도움을 받았고, 운이 좋게 KAMC 해외연수 장학생으로도 선발되어, 많은 도움과 지원속에서 뉴욕에서의 첫 출근을 하게되었습니다.

실습은 비만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다방면에서 볼 수 있도록 짜여있었는데, ´비만수술´ 참관, ´비만수술 전후관리를 위한 외과외래´참관, ´비만의 약물치료와 비만 합병증 관리´를 위한 내분비내과 외래를 참관을 하는 것이 주 일정이었고, 나머지는 내분비내과 입원환자를 보고 외래를 참관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당뇨, 고지혈증 등 대사질환 환자는 많아도 비만 자체만을 위해 치료받는 환자를 많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 병원에서는 하루에 비만수술이 평균 2-3개가 이루어질 정도로 비만으로 치료받는 환자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한 달 동안 실습을 하면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실습이 스케줄, 짜임, 배우는 내용 모두 흡사한데,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듯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질문을 많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나의 태도, 둘째,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 셋째, 가장 큰 이유이자 중요한 차이인 ´시간적 여유´였습니다.

´의사가 아닌 사람들´의 역할분담이 빛난 ´미국´

미국으로 실습을 가기 전 여러 후기를 읽어보았을 때, 공통적인 조언은 회진이든 수술이든 외래를 참관할 때든 계속 질문을 하고, 적극적, 자발적으로 참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실습과 달리 ´학생이 해야 할 일´을 따로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시키지도 않고, 조용히 있으면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문을 하고 많이 나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습을 시작하며 ´질문하자!´ 라는 말만 주문처럼 머릿속에 외웠고, 그렇게 ´질문을 하려는 노력´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본교에서 실습을 돌 때도 항상 교수님께서 ´질문있니?´ 를 물어보셨지만, 환자를 보고 계시거나 전공의 선생님들과 이야기 중일 때 대화에 끼어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항상 앞섰기 때문에, 적절한 기회에 적절한 양의 질문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교수님께서 환자에게 ´진료를 보면서 중간에 학생에게 설명하거나 문답이 오고갈 수 있으니 양해해달라´고 얘기를 했고, 학생에게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진료중간에도 질문해라´했기 때문에 ´조용히 있으면 네가 집중하지 않는 거라고 볼 것이다´라는 압박감마저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감히 중간에 끼어들어도 되나, 지금 말을 꺼내도 될까 조심스러웠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나자, 회진과 외래에 내가 마치 전공의가 된 것처럼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와중에도 ´그것은 그것 때문에 하는 것이냐´ ´이러한 것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수시로 끼어들어 묻고, ´그것은 제가 발표해보겠다´ 수시로 나서고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려면 교수님의 말씀, 환자와의 대화에 엄청나게 집중을 해야 했고, 똑똑한 의견과 질문을 내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했습니다. ´신환발표´ 몇 번, ´케이스 발표´ 몇 번으로 학생의 할 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학생 스스로 만드는 대로 기회가 생기는, 또한 자신이 한 만큼 배워가고 가져가는 실습이 되었습니다.

´의사가 아닌 사람들´의 역할분담이 빛난 ´미국´

또한, 흥미로웠던 것이 이들은 아는 것은 아무리 쉽고 사소한 내용도 아는 것에 대해서는 안다고 피력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어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놀랐던 적은 브리핑 중에 한 전공의가 ´ 이러저러하여 이 검사를 냈습니다´ 하자 다른 전공의가 ´ 왜 그 검사를 내야하는지 설명 좀 해줄 수 있니?´ 하자 교수님이 매우 즐거워하며 종이를 꺼내 메커니즘을 그려가며 설명하면서 ´ 이래서 이걸 내야해´ 라고 설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한국에서의 나 같았으면 ´ 어라, 저거 왜 내지? 저것도 모르면 혼날 것 같으니 가만히 있다가 회진 돌고 찾아봐야지!´ 하고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환자에게 설명을 하다가도, 전공의나 학생을 교육하면서도 기억이 안 나는 것이나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참관하던 학생한테 ´ 그거 검색 좀 해줄래?´ 하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질문하신 것에 전공의든 학생이든 대답을 잘 못한 경우에는, 다음 회진 때까지 이 주제에 대해서 정리해서 발표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다 보니 ´ 나중에 공부해야지´ 라고 미뤄둘 것이 없이 브리핑시간이 곧 공부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한국에서의 실습에서는 왜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안타깝게도 ´시간의 부족´ 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브리핑 시간을 예를 들면, 아무리 많아야 총 10명 안팎의 환자를 전문의, 전공의, 학생이 각각 2-3명씩 나눠 본 후에 발표했고, 진단이나 치료에 대해서 토론하고 토론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uptodate나 논문을 검색하고 읽었습니다. 브리핑이 끝나면 지난 브리핑시간에 각자 맡았던 주제에 대해 발표하고 이야기했는데, 이러한 형태의 ´ 교육적 브리핑´ 은 2-3시간이 족히 걸렸습니다. 이것이 매일매일 가능한 것은 대략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를 온통 브리핑과 회진에 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외래의 경우에는 ´ 내분비내과 외래´ 에 20명의 환자가 예약되어 있으면 내과 1년차부터 전문의까지 모든 전공의와 전문의가 나눠서 보았습니다. 각자 진단하고 처방내린 것을 정리해서 교수님께 보고하고 토의한 다음, 교수님과 함께 다시 환자를 보면서 환자에게 더 물을 것이나 설명할 것을 하고 최종 처방을 내렸는데, 이렇게 한 명의 환자를 보려면 1시간은 걸렸습니다. 하지만 20명을 나눠서 보다 보니 의사 한 명당 4-5명의 환자를 보면 되는 형태였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넉넉히 쓸 수 있다보니 전공의도, 전문의도 입원환자, 외래환자 모두를 정말 ´교과서에 있는 대로´ 모든 문진과 모든 신체검진을 시행하였고, 검사나 치료방법을 설명할 때에도 과정과 치료의 부작용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하고, 설명했다는 기록을 모두 남겼습니다. 워낙 의료소송이 많다보니 치료에 관한 설명과 차트기록을 아주 상세하게 하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환자에게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의 여유가 생길 수 있는 데에는 ´의사가 아닌 사람들´의 역할도 컸습니다. ´Nurse practitioner (NP)´라고 하여 간호사 중에 의사와 똑같이 환자는 보는 간호사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내분비 내과의 경우 복잡한 케이스가 아닌 단순 당뇨관리만 필요로 하는 환자의 경우에는 입원환자 및 외래환자를 모두 NP들에게 보도록 배당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이 적은 수의 환자를 더 꼼꼼히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는 연구에도 관심이 있기 때문에 미국병원에서는 어떻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에 매년 훌륭한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올 수 있는지도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여기에도 의사 아닌 사람들 즉, 비만연구에 있어 ´Physical therapist´와 ´Nutritionist´의 역할이 컸습니다. 병원 내에 그들의 연구실과 실험실을 두고, 수시로 의사들과 회의를 하면서 계획서를 쓰고, 연구를 진행하며 피드백을 주고받고, 논문을 써나갔습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연구에 대한 열정이 굉장히 높았고,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높았습니다. 한국의료환경과 미국의료환경을 비교해 볼 때, 건강보험과 의료수가와 같은 의료환경의 고질적인 문제가 가장 큰 영향이겠지만, 전공의 연차 별로 할 수 있는 일을 한정하지 않고 똑같이 나눠서 하되 교수님께서 최종 검열을 하는 방식의 진료방식, ´의사가 아닌 사람들´의 역할분담이 두 나라의 차이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우직하게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큼 외부에 대한 눈과 귀를 열고 자극을 받고 반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번 해외 임상실습은 제가 좋은 의사로 성장하는 데 좋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눈치보여서´ ´윗 분들이 어려워서´라는 변명아래 소극적으로 임했던 나의 태도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았습니다. 질문을 하려는 태도, 내가 얼만큼 아는지 피력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당당히 물어보는 것, 이토록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오는지 느꼈습니다. 전공의로서 수련을 받을 때도 이 점을 항상 머리에 새기고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