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3학년
실습기관 : 로레토 주립병원 감염내과병동 (Hospital Regional de Loreto) /
페루아마존국립대학의과대학 (UNAP-facultad de medicina humana)
저는 이번에 지구 반대편, 페루의 주립병원에 실습을 다녀왔습니다. 학교에서 연수과정에 대한 공고가 나기 전부터 주어진 선택실습 기간에 해외연수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특별히 페루 선택실습을 가게 된 이유는 최근 몇년간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해외유입감염병들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였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이유로, 학교를 졸업하고 수련을 받은 후 상대적으로 의료체계가 낙후된 나라들에서 봉사를 하고 국제기구에서 그들을 위한 대책을 세우는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있어 페루에서 그 의료체계를 경험하고 발전과 적용방향을 고민해보고 싶었는데 페루에 다녀온 지금 느끼고 배운 것은 가서 제가 채우려고 했던 지식적인 것들과는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바나나 처럼 생긴 페루의 북부 아마존 지역인 이퀴토스 의 로레토 주립병원 감염내과 병동에서 약 3주간의 실습과, 리마의 코이카 사업지역을 1주일간 방문하는 일정을 가졌습니다.
a. 병원 실습: 로레토 주립병원에서 저는 주로 아침 7시까지 출근하여 회진을 돌고 매일의 초독에 참가하는 스케줄이었습니다. 처음 병원 실습을 돌며 느꼈던 솔직한 것은 개발도상국의 병원에 대한 감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했던 기술들이 그곳에는 아직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모든 것이 수기로 이루어지고, 옛 의학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x-ray 필름을 햇빛에 비춰보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지금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 곳에서 어떤 것을 배우고 적용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것도 잠시, 한국에서는 한 명의 환자도 보기 힘들었던 교과서 속에만 나오던 병을 가진 환자들이 보였습니다. 제가 실습한 감염내과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말라리아, 에이즈, 톡소플라즈마증, 기생충 질환 등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병들이나, 이 곳 기후에 특화된 감염병들이었습니다. 특히 HIV 감염 환자가 병동의 반 정도 있었는데, HIV 자체의 치료보다 다른 기회감염에 따른 합병증이 의심되어 고생하는 환자들이 많아서 예방의학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쉽게 배우지 못하는 기회감염들이나 기생충 감염에 대해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현지의 교수님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지구 온난화로 인한 우리나라의 기후변화에 따른 감염병 스펙트럼의 변화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알게 될 수 있어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감염병과 동시에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지식적인 부분을 뛰어넘어 병원 실습에서 사실 가장 인상깊었고 제 인생의 하나의 전환점이 된 것은 그 곳에서 의학의 초심을 보게 된 것입니다. 시설적인 면이 낙후되어서가 아니라, 그 곳에서 형용할 수 없는 열정과 순수한 마음을 보고 온 것 같습니다. 사실 로레토 주립병원은 이퀴토스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그 지역의 최종적인 3차 의료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분명 시설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먼저는 확실히 그 지역의 감염병들, 말라리아, 뎅기열 등 그 지역 사람들을 위해 알아야 할 것은 명확히 알고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 곳에 필요한 것,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을 항상 찾는 것이었습니다. 공공의료기관으로 사립병원에 비해 결국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올 수 밖에 없는데, 그들을 아침마다 한명한명 얘기를 들어주고, 이웃이 되어주는 모습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 인류애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실습기간중에 페루의 ‘의사의 날’-매년 10월 5일-이 있어 그 날을 기리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이 행사를 통해 이들의 멘토가 되는 인물이 어떤 이인지 알게 되어 감동이 더 컸습니다. 페루 의사의 날은 다니엘 카리온이라는 의사의 죽음을 기리는 날로, 그는 안데스산맥 지역 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토착병인 ‘베루가 병’을 환자의 혈액으로부터 직접 스스로의 몸에 주입하고, 병의 진행과 자연사를 밝혀 병의 연구를 빠르게 하고 후에 치료를 앞당기게 했습니다. 그 자신은 몇주후 10월 5일에 병으로 인해 사망했고, 그의 이런 희생을 ‘의사의 날’로 기념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어찌보면 너무나 과격한 그의 희생을 페루의 의사들은 이상적인 ‘의사의 한 모습’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매년 다니엘 카리온을 기리는 모습을 보며 모두는 아니더라도 페루의 의사들에게 분명 의료의 길을 갈 때 적어도 1년에 한번씩은 그 방향성이 되어주는 멘토와 같은 인물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높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감같은 사회속에서의 의사의 ‘이상적인’ 모습보다 더 깊은, ‘환자를 생각하는 것’, 그 순수하고 어찌보면 너무나 원초적인 ‘이타심’이라는 가치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의 희생이 무조건 옳다고도, 모든 의료인들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 앞에서 잠깐이라도 멈춰서서 저의 초심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점검할 수 있고 도전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장기려박사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박사님이 추구하셨던 의료의 방향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참 감사했었는데, 다시 한 번 그와 같은 길을 페루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 이어서 저는 학생의 입장으로 그 곳의 선배들이 학생들의 교육과 후배양성에 힘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환자 곁에 서서 직접 신체검사를 진행하고, 학생들이 시행해 볼수 있도록 함으로서, 학생들이 환자들을 만나는 것을, 진찰하는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교과서 속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보았고, 저도 체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것은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고, 의사-환자의 관계가 아직도 수직적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병원 실습에서는 환자분들도 불쾌해하시는 경우도 많아, 제대로 실습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함께 협력하는 분위기가 참 부러웠습니다. 문제점들을 피하기 위해 가상현실 교육 등 점점 환자들을 대면하는 학습이 줄어드는 데, 교육의 시간을 벗어나 의사라는 면허를 가지고 진료할 것을 생각하면 반드시 “Bed-side teaching”이 필요한 곳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든 것 외에도 실습을 하며 의료의 국제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페루 의대생들, 의사들, 그리고 같은 시기에 파견되어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준 UCLA 레지던트선생님까지 3국의 의료를 함께 얘기하고 토론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화라는 추세 전에 이미 의료라는 것은 나라를 뛰어넘는 공통되는 줄기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최근 세계는 신고립주의의 유행으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다시 사그라들고 있지만, 인류에 대해 국제의료기구의 활동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루어 질 것입니다.
추가적으로 페루의 의료제도, 특히 공공의료적인 부분과, 페루의 신기한 약용 식물들에 대해서 더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실행은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페루는 공공의료체계가 넓게 퍼져있고, 혜택범위가 넓습니다. 페루의 인프라 스트럭쳐에 적절한 국제사회의 도움이 있다면 페루의 의료상황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며 선진국에서도 그 구조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예방의학이라는 것은 너무나 먼 학문이었는데, 단순히 환자 한 명 한 명의 병을 치료하는 것과 동시에, 문제가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근본적인 예방체계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게 되어 놀라웠습니다. 또한 이미 세계 유수의 병원과 대학에서 주목하여 아마존 지역의 전통적인 약용식물들을 연구하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요법들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연구해보면 좋을것 같습니다
b. 코이카 사업지 방문
마지막 1주일은 연세대학교 김종구 교수님과 함께 리마의 발레비스타, 카야오, 코마스 지역의 한-페병원들(1차 병원급)을 방문했습니다. 앞에서 적었듯이 페루는 공공의료의 비중이 높습니다. 페루의 보험체계는 의료급여와 비슷한 공공보험, 직장보험, 군-경보험, 사보험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중에 비해 공공의료의 질이 낮고, 적합한 필요를 채워줄 수 없어 결국 환자들은 사보험으로 개인 클리닉을 이용하게 된다고 합니다. 현재 코이카는 이 곳 한페병원들을 중심으로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특히 고혈압 사업을 시작하여 주민들이 자신들의 혈압을 알게 하며, 1차 의료기관으로서 고혈압의 발생을 예방하고,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을 예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건강증진을 위하여 신체적 질병관리 뿐 아니라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 증진 사업도 함께 시행하고 있었는데, 넓은 공공의료 구조와 주민들의 좋은 순응도가 적절한 기술을 만나니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첫 3주간 페루의 의료체계를 체험했다면, 이 마지막 주는 그 발전방향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한페병원에서는 코이카에서 자체적으로 계발한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을 도입하여 환자들의 정보를 모으고 관리하고 있었는데, 3차 의료기관에도 코이카의 이런 시스템이 페루에 잘 정착하고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곳에 가서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지식적으로 충만해져 올 거라는 저의 생각은 교만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내가 앞으로 어떤 의학자가 되어야 하는지, 의사는 누구인지 저 스스로에게 너무나 중요한 초심을 배우고 오게 되었습니다. 또 인생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해외에서의 실습을 통해 의료계의 공통성을 많이 느끼고 왔는데, 막연히 한 명의 임상의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의 진로에 있어 큰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곳에서 만난 학생들과 함께 웃으며 어딘가의 미래를 꿈꾸고 기대하며 계획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으며, 훗날 의료취약지역의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저로서는 이번 연수를 통해 개발도상국 의료의 약점과 동시에 강점도 알 수 있어서 한정된 자원에서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해볼 수 있었고, 그 실제적 적용까지 볼 수 있어 너무나도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고서를 쓰다보니 가장 많이 느낀 것에 대해 적느라, 처음 지원 동기에 적었던 기후 변화에 따른 감염병 변화에 대한 공부를 한 것은 말라리아에 초점을 맞추어 작은 레포트 형식으로 별첨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