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그리고 의료진 모두가 행복한 병원 ´핀란드´

KAMC 해외연수 장학생 소감문

환자 그리고 의료진 모두가
행복한 병원 ´핀란드´

이남헌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4학년

저는 지난겨울 KAMC 제2기 해외연수 장학생에 선발되어 세계의대생협회(IFMSA)에서 주관하는 SCOPE(Standing Committee on Professional Exchange)프로그램을 통해 핀란드로 한 달간 실습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갔던 Helsinki University Central Hospital은 핀란드의 가장 큰 병원으로 수도인 Helsinki와 그 외곽의 위성도시인 Espoo, Vantaa에 위치한 17개의 병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중 main 병원인 Meilahti Hospital과 외상 전문 병원인 Toolo Hospital에서 4주간 실습을 진행 하였습니다.

실습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1지망으로 지원했던 흉부외과가 아닌 2지망이었던 영상의학과에 배정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불가피하게 기존에 설정하였던 목표를 조금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핀란드 헬싱키대학병원 영상의학과 실습을 통해 배우고자 했던 바는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였습니다.

  • 첫째, 유럽 내 의료 만족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핀란드 병원의 시스템을 느껴보기
  • 둘째, 외상전문병원에서 실습을 하며 체계적인 외상 환자 관리 시스템을 살펴보기
  • 셋째, 디자인 강국으로 알려진 핀란드에서 병원을 어떻게 디자인 하였는지 살펴보기

처음에는 흉부외과에 배정 받지 못해 실습 전 기대하던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소아 심장수술이나 교과서에서만 보던 케이스들을 보게 될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조금 불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4주간의 실습이 끝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평소에 생각하지 않고 지내던 새로운 중요한 가치들을 깨닫게 된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자 그리고 의료진 모두가 행복한 병원 ´핀란드´

핀란드의 의료 시스템이나 병원의 풍경은 한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한국과는 반대로 90%이상이 public hospital이고 primary health care가 확실히 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의료전달체계가 확실하게 정립되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가장 큰 차이는 하루에 의사가 보는 ´환자의 수´ 이었습니다. 많은 교수님들이 해외 연수를 다녀오신 후 하시는 말씀이지만, 정말 환자를 적게 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환자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근무 시간´이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법적으로 주당 근무시간을 40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전공의, 교수님 구분 없이 철저하게 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근무 시간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레지던트 3년차 선생님이 직접 인터벤션을 하는 등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옆에서 지켜보며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에 치이고, 피곤에 치이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고, 시간을 참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귀국 후 호주 국립대학의 한 연구팀에서 발표한 논문을 접하게 되었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주당 노동시간 한계는 39시간이며, 이 시간이 넘으면 정신건강이 감퇴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보고서에서는 핀란드가 노동시간의 좋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의과대학생들의 진료활동이 허락된 것입니다. 의학교육은 6년으로 한국과 동일하지만, 학생들은 4년간의 의학교육을 받은 이후로는 다시 말해, 본과 3,4학년 임상실습을 돌면서 처방 권한이 주어졌고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방학 때는 월급을 받으면서 지역사회의 일차의료기관이나 병원에서 general practitioner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실습을 하던 시기가 방학기간중이라 이러한 형식으로 같이 실습을 돌던 학생이 있었는데, 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 것을 보고 살짝 ´속았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핀란드에서 이러한 제도가 도입된 배경에는 의사의 수가 인구 1000명당 2.7명으로 부족한 까닭에 시행된 제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졸업 전부터 의과대학교육만을 통해 실제 환자를 볼 줄 아는 의사로 키워나가는 것은 인상 깊었습니다.

네 번째, 공공 의료기관의 비율이 높았고 의료전달체계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영국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근접하게 전체 의사의 10%만이 사설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나머지 90%는 공공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형태였습니다. 공공 의료기관들은 지역별로 묶여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하나의 거대한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했던 점은 하나의 병원이 모든 것을 다하는 구조가 아닌 각각의 병원은 역할이 분담이 되어있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첫 2주간 실습을 하였던 Meilhati hospital은 가장 크고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병원으로 핀란드 내의 모든 이식수술들이 이 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후 2주간 실습을 하였던 Toolo hospital은 외상 환자 전문 병원으로 헬싱키 주변 지역의 모든 외상 환자들은 이곳으로 이송되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병원들이 역할 분담을 함으로, 병원 내부의 구조나 운영 시스템, 그리고 한정된 의료자원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외상전문병원인 Toolo hospital실습하는 동안 운이 좋게도 외상환자의 도착에서부터 검사들의 진행 그리고 수술실로 들어가기까지 과정을 환자를 따라다니며 생생하게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한국 병원의 응급실에서 CPR팀이 심정지 환자가 들어왔을 때 재빠르게 움직이듯이,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알고 순서대로 처치를 하는 모습은 인상 깊었습니다. 앞서 말하였듯이 병원의 구조 또한 앰뷸런스에서 환자가 내리는 순간부터 수술실에 이르기까지의 경로를 최소화 하여 설계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환자는 불필요한 과정이나 시간들이 생략되어 지체 없이 필요한 처치를 받을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다섯 번째, 요즘 설계 되어 지어지는 병원들은 다 그렇겠지만, 전체적인 병원의 구조나 시설들 면에서 세심한 부분까지 환자들을 많이 배려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환자들이 이용하는 통로와 의료진들이 이동하는 통로가 구분되어있었는데, 복도를 설계함에 있어서 의료진은 환자에게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도록, 환자들은 대기하는 시간동안 의료진들을 계속 마주쳐서 불안해하거나 불편해 하지 않도록 설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어린이 병원에서는 아이들이 MRI기계 속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할까 대기실 내에 MRI기계 모형을 놀이기구처럼 설치하여 놀 수 있게 함으로 친밀감을 느끼게 공간을 조성해 놓은 것은 patient experience가 강조되고 있는 이 시대에 한국의 병원들이 나가야 할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자 그리고 의료진 모두가 행복한 병원 ´핀란드´

핀란드의 의료 시스템이 완벽하고 이상적 것만은 아니겠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배울게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의사에게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시간이 있다는 것은 정말 저에게 새로운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한 달간의 실습을 통해 느낀 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어떻게 병원이라는 공간이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진들에게도 만족스러운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경험한 시간´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에 대한 저의 가치관에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였고, 앞으로의 전공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큰 고민을 하게 만든 실습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온 의과대학생들과 만나 교류하며 핀란드의 기나긴 밤을 함께 지새우며 보낸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주신 한국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협회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보고 듣고 배우며 받은 많은 것 다시 우리 사회에 되돌려 주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