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강석훈 교수(의학교육학교실)
우리나라에서 근대 의학교육이 시작된 것은 100년도 전의 일이다. 언제 누구에 의해 근대 의학교육이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잠시 접어두고 매년 3천명의 의사들이 배출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보자. 과연 우리는 어떤 의사를 길러내고 있을까? 우리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발표된 의사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중에서 교육목적과 교육목표에 ´일차의료 또는 일차진료´를 언급하고 있는 대학은 16개에 불과했다. 70%이상의 대학이 ´일차의료´를 언급하였던 2006년의 상황과 비교할 때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14년 발표된 의료기관 종별 의사 현황에 따르면 전체 의사의 40.3%는 의원, 즉 일차의료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3년 전의 통계지만 그동안에 개원의 수가 줄어들 만한 획기적인 정책은 없었으니 상황은 변치 않았다. 적어도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단계에서는 일차의료에 대한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정한다면 너무 섣부른 판단일까?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시기적으로 의과대학 교육(Undergraduate Medical Education), 전공의 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 연수 교육(Continuing Medical Education)으로 나뉜다. 전공의 교육은 주된 목적은 전문의 양성에 있고 의과대학은 일차의료 의사 양성을 외면하는 현실이니 전체 의사 수의 40%에 달하는 일차의료기관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연수 교육에 전념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의사 연수 교육은 일차의료에 적합한 의사를 양성하는데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결과가 앞서 언급한 보고서를 통해 제시되었다. 연구진은 일차의료 의사의 역량을 규정한 뒤 개원의 그룹과 대학병원의 전공의 그룹을 대상으로 해당 역량을 습득한 시기가 언제인지 설문조사를 하였다. 전공의들이 전공의시기에 일차의료 의사의 역량을 습득한다고 답하는 데 비해 개원의들은 개원의 시기에 해당 역량을 습득했다고 대답했다.
해당 병원의 전공의 교육과정이 일차의료 의사를 위한 역량교육에 적합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와 정반대로 응답한 전공의들이 일차의료 의사에게 요구되는 역량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판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전공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전문의 양성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슬픈 일이다. 우리나라 전공의 교육이 전체 의사의 40%를 상회하는 우리나라의 의사인력의 분포를 전혀 고려치 않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리나라 의학교육을 이루고 있는 3개의 중심축인 의과대학 교육, 전공의 교육, 연수 교육이 모두 잘못 되었다거나 혹은 나쁘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기에 물적, 인적 자원 낭비의 요소는 없는지, 교육 수요와 공급자 모두가 서로 win-win하는 방법은 없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기간을 합쳐 10여 년 동안 공부한 것도 모자라서 다시 개원가에 들어가 수년간 일차의료에 대해 배워야한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피곤할지 상상이 간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면서 어떻게 사랑하는 가족들과 저녁식사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겠냐하는 말이다.
물론 우리 의사들은 선장이 사라진 세월호의 승객들처럼 이미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걷고 있다. 일차의료를 주도해야 할 개원가는 돈 되는 분야로 전업한지 오래되었고 교육과 연구에 전념해야할 대학병원들은 덩치를 부풀려 매출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식물인간처럼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 의사라서 보증되는 명예와 경제적 안락함이라는 마취제에 취해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희망은 있다고 믿는다. 아래 그림처럼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3단계로 나뉘어져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의학교육양성체계가 왼쪽 선처럼 꺾여있다 해도 각각의 단계에서 조금씩만 변화시킨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의사들을 길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선 각 단계를 조율하고 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의학전문가 집단이 필수적이다. KAMC와 병원협회, 대한의학회, 의사협회, 전공 학회 등을 망라하는 연합체이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조직이 필요하단 소리다.
결론이다.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 전문가의 자격이 부여된다. 정부가 나서건 국민이 나서건 의료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은 예정되어 있는 낌새다. 왜 우리는 항상 뒤늦게야 대정부 투쟁에 나서야만 하는가? 그것도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면서 말이다. 정말로 의사 전문가 집단의 누군가가 나설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대한민국 최고의 두뇌집단이 각자도생의 삶을 추구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보다 끔찍한 국가적 불행이 또 있겠는가?
기관 수 | 의사 수(%) | |
---|---|---|
상급종합병원 | 43 | 21,308 명(23.5%) |
종합병원 | 287 | 18,070 명(20.0%) |
병원 | 2,811 | 14,673 명(16.2%) |
의원 | 28,883 | 36,475 명(40.3%) |
합계 | 32,024 | 90,526 명(100%) |
출처 : 2014 건강보험통계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