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의 불편함을 속삭이고 우리는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 교과서보다 더 좋은 선생님이라고 느끼는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오전 구경이 모두 끝나고 우리는 밤에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 몰래 남자방 여자 방을 넘나들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어떤 여자애 한 명이 꽤나 인상적인 놀이를 제안했다. 바로 '전기'라는 놀이였다. 술래와 범인 한 명씩 정한 뒤 둥그렇게 둘러앉아 모두 손을 잡고 그 위로 이불을 덮는데 술래만 손을 이불 위로 올리고 있고 나머지는 손을 이불 밑으로 숨기고 있는다. 그럼 미리 정한 범인으로부터 시작된 손을 꼭 잡는 행위가 전파되어 술래의 손에 박수라는 형태로 다가오고 술래는 이 전기라는 행위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범인을 맞추기 시작하는 단순하고도 추리력을 요하는 게임이었다. 남자애들과 손을 잡고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사춘기의 우리들에게는 꽤나 짜릿한 맛을 느끼게 해주었기에 모두들 신이 나서 하고 싶어 몰려들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즐겁게 어울려 놀이를 시작했지만 이 놀이에 영 소질이 없었다. 모두들 자기가 범인이라며 우길 때도, 혹은 아니라 할 때도 난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친구들의 표정만으로, 이야기만으로 어디에서부터 이 전기가 시작되었는지 알 방법이 없어 계속 술래만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전기라는 놀이는 수학여행이 끝나 학교에 돌아와서도 지속되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교실 뒤편으로 나와 담요 두 개를 이어서 친구들 모두 이 게임을 즐기곤 했다. 여느 날처럼 친구들과 함께 이 전기 놀이를 하고 있었을 때 담임선생님이 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으시며 "은주야. 막내 삼촌이 돌아가셨대. 지금 얼른 집으로 돌아가 봐라."라고 말씀하셨다. 말 그대로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에 가방을 싸는 둥 마는 둥 해서 집에 오니 검은 옷을 입고 소파 위에 앉아서 먼산만 바라보시는 아버지와 울면서 10년도 더 된 검으튀튀한 갈색 서랍에서 나와 동생의 옷을 꺼내고 계신 어머니가 있었다.
이미 셋째 작은 아버지가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원인모를 급성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픈 과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친가 가족들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셨고 이러한 일이 있은지 딱 3년이 지났을 때였다.
지금의 나와는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삼십 대 초반이었던 막내 삼촌은 나에게는 꿈의 '남자 친구' , 아들만 다섯이던 친가 가족들에게는 딸 같은 아들이던 존재였다. 잘생기고 공부도 잘할 뿐만 아니라 일명 대기업을 다니던 막둥이 삼촌은 우리 할머니의 자랑거리였고 완벽한 막내 삼촌의 모습에 나는 막내 삼촌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라며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불렀었다. 자식, 형제를 잃은 우울함에 정적이 흐르던 집에 작은 웃음이 흘러나오게 늘 노력했던 마냥 햇빛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인천에서 전주까지 단걸음에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삼촌은 사진 속의 한 형태로 남겨져 있었고 이제 그를 더 이상 만질 수 없었다. 3년도 채 안돼서 소중한 사람을 또 한 번 하늘나라로 보낸 충격은 모두에게 있어서 누구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상처였고 아픔이었다. 십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절에 친가 식구들끼리 다 같이 모이면 막내 삼촌 얘기를 아무도 쉬이 꺼내지 못한다.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열지 못하는 사진첩처럼 각자 매번 몰래 꺼내 둘 뿐이다.
삼촌의 죽음이라는 것을 접하자마자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뵈었던 명절, 아버지와 삼촌이 이야기했던 짧은 대화가 단편적인 장면처럼 강하게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삼촌이 아버지께 넌지시 건넨 이야기 중 일부였는데 이따금씩 왼쪽 가슴 한편이 가끔 찌릿 거린다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셋째 삼촌도 갑자기 하늘로 갔으니 꼭 병원에 가서 한번 검사를 받아보라고 대답하시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셨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한 귀로 흘려듣고 지나가버린 그런 이야기였다.
그 이듬해 겨울, 외고 준비로 정신없이 영어단어를 하루에도 몇 개씩 머리에 넣을 무렵, 갑자기 책상에 앉아서 단어 채점을 하던 나의 왼쪽 가슴 한편이 전기가 온 듯 찌릿거리는 걸 느꼈다. 그 날 나의 짧은 기억 속 삼촌이 느꼈다는 그 찌릿거림이 떠올랐다. 심지어 그 기분 나쁜 감정은 그날 이후 하루에도 몇 번이고 계속되었다.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니 심장질환으로 유명하다는 병원으로 날 데려가셨다. 심전도 검사, 심초음파, 24시간 심전도 검사, 운동부하 심전도 검사... 어린 나이에 쏟아낼 수 있던 검사란 검사는 모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심장엔 이상소견은 보이지 않았고 모두 정상이라는 이야기만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었을 뿐이었다.
많은 검사 끝에도 왜 이렇게 가슴이 전기가 오듯 찌릿한지 조차 찾지 못했던 나는 이후로 삼촌과 같은 짧은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원래 언제 죽을지 모른다지만 하루에도 몇 번이고 계속되는 찌릿함이 전기 놀이처럼 누가 범인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평생 술래가 되어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같이 갑자기 죽는다면 이 짧은 인생 동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공포감이 나의 심장 안으로 엄습해왔다.
그 후 예민한 마음에 며칠을 누워서 밥도 먹지 않고 고민했었는지 모른다. 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공부도 하지 말고 편하게 죽어버릴까 라는 생각들도 가끔은 날 에워쌌다. 한 3일쯤 그렇게 수업시간에도 학원가서도 집에 누워서도 오직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할 무렵 그렇다고 난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나에게 주어진 그 상황이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교실에서 하던 전기 놀이 같았다. 이 찌릿함이 전기 놀이의 일부라면 내 일생이 걸린 놀이일지도 모르기에 범인을 찾아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범인을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깝고 근거가 넘치는 위치에 내가 있었어야 했다. 고작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해리슨 내과학을 읽기 위해 도서관 한편에 자리 잡고 몇 시간이고 앉아있었다. 몸보다 무거운 책을 들고 이해하지 못하는 의학용어를 일일이 적고 구글에서 영어 번역을 해보기도 했다. 심장이 뛰는 원리가 전기전위라는 것이고 그것이 어긋나는 경우가 언제인지를 고등학교 생물 선생님께 붙들고 여쭤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나 나름대로 술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범인을 추격하는 발악 중 하나에 해당했다. 하지만 이해를 하거나 알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조금 더 명확하게 범인을 찾기 위한 직업을 찾게 되었고 그게 의사였다. 만약 내가 의사가 되는 꿈을 이룬다면 지금 보다 더 전문적으로 내 심장이 찌릿거리는 원인도 내손으로 내가 직접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머리가 그렇게 좋지 않았던 내가 남들보다 노력을 몇 배씩 하면서 조금 돌아서라도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던 이유였다.
지금도 그냥 이유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갑자기 찌릿찌릿 전기가 흐르는 내 왼쪽 가슴을 한 달에 한두 번씩 느낄 때가 있다. 순환기계라는 과목을 배우고 수업도 열심히 들었지만 난원공 개존이라거나, 심근병증 등 다양한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을 뿐 나의 이 짧은 지식으로 아직까지 어디가 문제인지 정확히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지금도 이따금씩 심장이 찌릿할 때면 한없이 짧았던 삼촌의 인생과 그리고 어쩌면 내일이 마지막일지 모르는 내 인생을 다시 한번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훑어 내려가며 나는 두려워했던 과거와는 달리 그 중학교 2학년 때의 전기 놀이를 다시 떠올린다. 친구의 표정에도 말에도 휘둘리지 않고 이번 게임에는 근거 있게 과학적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야 한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삼촌의 인생을 삼켜버린 그리고 나의 인생을 삼켜버릴 수도 있는 이 전기 놀이의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또한 우리 삼촌 같은 다른 전기 놀이의 술래들에게서 대신 범인을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스름한 새벽, 아직 아무도 시작하지 않은 새로운 시간을 졸린 눈을 비비며 공부로 채워가는 이 지금, 난 내 인생 모두를 건 이 ´전기´놀이에서 또다시 술래가 되어 범인에게로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번 놀이에서만큼은 난 승자가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