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시간이기에, 사람이 나눌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것도 시간이었습니다.´
이 문장은 나의 대입 자소서 3번(인성) 문항 첫번째 줄이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지,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본 적 없던 나의 의사라는 꿈에 ´시간´이라는 가치를 부여해 준 것은 봉사를 하며 만난 ´아픈 시간 속의 사람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3년간 다녔던 요양원에 처음 갔을 때, 내가 맡은 분은 치매를 앓고 계신 한 할아버지였다. 그 분께서는 과거에서 이야기하시듯 사시던 그곳으로 돌아가시겠다며 15분 동안의 똑같은 대화와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고 계셨다. 4시간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가슴 한 켠이 아린 것을 느꼈지만 그 아림이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이후 반찬봉사를 가거나 요양원에서 말동무를 해드릴 때 너무나 좋아하시던 어르신의 모습에서 ´내가 어떤 다른 것을 드릴 수도 없었고 같이 있어드리기만 했는데도 왜 이렇게 좋아해주시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간호조무사 선생님께 가지 말라고 간절히 부르시는 한 어르신의 모습에서 그분들이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원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인간의 행복이 ´시간´이라는 것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찬배달봉사를 하다 몇 번 초인종을 눌렀는데도 답이 없어 뒤돌아 섰다가 힘없이 문을 여신 할머님의 불편한 다리를 마주한 그날, 재촉하듯 초인종을 3번이나 누르는 동안 짧은 마룻길을 아주 길고 다급하게 걸어오셨을 모습을 생각하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분들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해왔다는 것을. 배려란 그 사람의 시간에서 함께 발맞추어 걸어나가는 것이었고, 나눔이란 나의 시간을 기꺼이 다른 이를 위해 쓰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첫날의 아림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치매 할아버지께서는 흐르지 못해 고여있는 시간 속에서 무한히 돌고 계셨던 것이다. 요양원과 병원에 계신 환자분들의 시간은 ´멈춰져´있었다. 멈춰서 달리는 그분들의 초침을 마주한 순간 나는 다짐했다.
´시계공이 되고 싶다.´
병실의 시계는 멈춰 있다. 넥타이를 매고 달리던 한 아버지의 시침은 링거줄에 매어있고 고무장갑을 끼고 아이들을 깨우던 한 어머니의 분침은 주사바늘로 꽂혀 있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달리다 넘어졌을 때, 이른 새벽 거울 앞에서 얼룩진 코피 자국을 마주했을 때 시계는 깨졌다. 홀짝홀짝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아버지의 시계는 멈춰 있다.
하얀 가운을 입고서 술에 깨어진 시계유리를 다시 이어 붙이고 담배에 태워진 초침을 고쳐줄 수는 있지만, 멈춰있던 시계의 나사를 돌려 ´현재 시간´으로 맞춰 줄 수는 있을까?
멈춰진 시간동안 병실 밖 시간은 흘러간다.
힘겹게 지켜오던 사무실 한 켠의 책상 위엔 차가운 사무박스 하나만이 놓여있고, 집안의 자랑이었던 첫째 아들은 수능 날 따뜻한 보온도시락 대신 찬 편의점 도시락을 들고 간다.
병실 공기가 무거운 이유는 시간이 고여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환자들은 시계를 고치러 온 것이 아니라 시간을 돌려받으러 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시계공이 되고 싶다,
병원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계가 모이는 곳이다. 누군가의 엄마로, 아빠로, 아들로, 딸로 살아온 그들은 병원 시계 아래 멈춰진 자신의 시계를 바라본다.
환자분들이 의사에게 가장 묻고 싶은 건, 이 암이 얼마나 위험한지가 아니라 ´그래서 내가 다시 아이들 등굣길을 챙겨줄 수 있도록 내 알람 시계를 맞출 수 있을까´이고, 환자분들이 의사에게 가장 듣고 싶은 건 주목할만한 신약 개발 소식이 아니라 ´가족들을 부양할 돈을 벌 회사에 출근하며 시계를 차도 좋다는 말´일 것이다.
차갑고 두꺼운 진료실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힐 때마다 한 사람의 삶과 시간이 절망과 안도 사이를 진자 운동한다. 하얀 가운을 입고 의사가 되어 건강한 몸을 되찾아 줄 수는 있지만, 곪아간 시간을 안아줄 수는 있을까.
나는 오늘도 미래의 나의 환자가 되어 주실 그분들을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의학을 공부하기 전, 그 삶을 이해하기 위해 그분들의 시간을 공부하고 싶다.
등교하기 위해 학교병원을 가로질러 가던 어느 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있는 병원 로비에서 귀가 들리지 않아 데스크 앞에서 답답한 듯 손짓하던 한 환자 분을 보았다. 그날 나는 ´미래의 내 진료실에 찾아와 주실지도 모르는 농인 환자 분을 위해서 수어를 배워야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얼마 뒤, 수어전문교육원에 찾아가 매일 2시간씩 그분들의 시간과 세상을 배웠다. 그렇게 나는 수어를 배웠고, 세상의 또 다른 삶을, 또 다른 시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세상 모든 이들의 시간을 함께 걸어갈 수는 없지만, 나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안이라도 그의 손목에 찬 시계가 째깍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낯선 외국어를 공부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헤매며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때론 누군가가 ´참 피곤하게 산다´라며 고개 젓더라도, 내게 그 ´멈춘 시간´을 맡겨줄 그 한 사람이 느낄 자그마한 따스함을 위해서 나는 내일도 이렇게 시계를 고치는, 시계공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