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협회는 COVID-19 확산 여파로 장기적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의대생들에게 미친 영향을 직접 들어보고자 'KAMC 코로나19 의대생 에세이 공모전'을 시행하였습니다. 이에 지난 7월 선정된 우수작을 선보입니다.'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정오, 대구에 31번째 확진자에 연이은 확진자들이 늘어나면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PK 실습이 임시 순연되었다. 청년층은 감염의 위험군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실습중단은 상상도 못했지만 방학을 맞게되어 부천의 본가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목이 칼칼하고 가래가 끼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 미열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코로나19의 주요 증상인 발열, 기침, 인후통은 없었지만 미미한 증상의 감염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몇일 뒤, 보건소에 전화를 했다. 주증상은 없지만 감기증상이 있고 대구에 다녀온 이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런 증상으로는 검사를 해줄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동네 병원에 내원해보라는 안내를 받았다. 조금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증상이 미미해도 혹여 내가 감염자라면 동네 병원에 갔다가 또 다른 감염자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인 것은 아닌가? 뉴스에서 본 한 확진자가 확진 받기 전까지 보건소에서 검사를 3번이나 거절당했다는 사연이 남일같지 않았다. 하루 이틀 증상을 지켜보다 보건소에 다시 전화를 했다. 몇 일전부터 부천의 새로운 확진자들이 모두 대구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전보다 자세히 내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이 이번에는 역학조사관께서 이틀 후 오전 10시까지 부천의 한 선별진료소로 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막상 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하니 불안해졌다.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올수 있는 가능성, 도리어 진료소에서 감염되어 돌아올 수도 있는 가능성, 또 내가 위험군으로 분류된 것 등에 대한 불안감이 난무했다. 참 아이러니 했다. 확실히 알고싶어 검사를 원했지만 오히려 검사를 거부당했을 때 잠시나마 안도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깔끔하게 결과를 보고 내가 감염자일수도 있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었다. 내가 감염자인지 모르는 지금은 어딜 잠깐 나가기도, 심지어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고 대화하는 것조차 찜찜했기 때문이다. 가족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외부에서 접촉하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경증 혹은 무증상인 상황에서 코로나19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19 치료제가 아직 없는 것, 한국의 코로나19 치사율이 낮은 것, 모든 검사의 특성상 위음성, 위양성이 가능하다는 것, 게다가 코로나19가 너무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점이 검사와 전수조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했다. 실제로 2009년 신종플루의 경우 어느 순간부터 전수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감염자가 너무 많아 실질적으로 효율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버드대학의 한 전문가는 올해 코로나19의 감염자가 전세계의 40-70%를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현재로서는 경증의 의사환자가 감염자라고 확진을 받으면 그 환자는 격리되어 완치 될때까지 입원하는 수밖에 없다. 이로 이해 따라오는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피해는 온전히 환자의 몫일 것이다. 그렇다고 검사를 받지 않아 감염자임을 모른채 활동한다면 주변에 지속적으로 바이러스를 전파하게 될텐데, 이것은 특히 코로나19에 취약한 계층에는 매우 위험한 상황일 것이다. 여러 생각이 오갔다.
이 일을 계기로 코로나 19와 같은 유행성 전염병 사태에서 앞으로 의료는 과연 어떤 모습을 띄게 될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간 의료인들이 개별환자에 대한 치료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치료단계까지 오지않도록 미리 방지하는 예방 차원의 의료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염병의 문제 외에도 현재 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개인의 건강관리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코로나19 주간 발생보고서(2020.06.13.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코로나19 치명율은 2.3%이며 이 중 92.8%가 60세 이상, 98.5%가 심뇌혈관질환이나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들이었다. 확진자들은 20-29세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었는데 이들의 치명율은 오히려 0.0%였다. 이는 환자의 면역상태가 코로나19 감염 후 치명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코로나19에 있어서 고령에서는 건강관리가, 청년층에서는 전파관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올해 코로나19 창궐로 인하여 앞으로 한국에서 또 다른 전염병이 발병할 수 있는 주기가 최소 5년으로 전망된다. 이제 전염병 관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의료시스템은 어떻게 변화할까?
첫째, 예방적 차원의 의료에서는 지역 내 거점 병원 중심의 의료의 활성화가 필요할 것이다. 개인의건강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기적 검진과 교육이며 현재 의료시스템 상 이것을 담당하기 가장 적합한 곳은 1차병원이기 때문이다. 1차병원이 거점 지역의 주민들의 주치의 역할을 맡게 되면 환자들은 효율적인 건강관리를 받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2,3차 병원의 과부하 또한재분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많은 “코로나 전사”들이 과로에 지치고 심한 경우 사망까지 이르렇다는 뉴스를 여럿 보았을 것이다. 안그래도 환자들이 넘치는 2,3차 병원에서 추가적으로 코로나19 환자들의 치료 그리고 코로나 선별검사까지 맡게 되며 일어난 상황이다. 앞으로 2,3차 병원에서는 1차 병원에서 더이상 관리가 불가능한 질환 혹은 집중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주로 보게하고 그 외는 1차병원이 담당한다면 이번처럼 상급병원은 너무나 일손이 부족했던것과 반대로 로컬병원은 환자가 줄은 상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올해 중국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의 치료를 맡고있는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상당수가 우울증, 불안감, 불면증, 고통(distress) 의 증상들을 겪고 있음이 보고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앞으로 COVID-19와 같은 대유행 전염병을 상대하는 것이 의료인의 정신건강을 저해할 수 있는 위험을 지니고, 이후에도 의료인이 정신적으로 도움 혹은 치료를 필요로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특수 상황에서 계속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료인들이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이 의료인, 환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유행성 전염병은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빠르게 구축하는 것 만이 질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둘째, 공중보건의 중요성이 높아질 것이다. 코로나19로 세계는 사상 초유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각자 집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제 더 이상 개인 혼자서만 건강한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게되었다. The Atlantic의 한 과학전문기자는 코로나19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며, 미국 9/11테러 이후 세계가 대테러에 초점을 맞췄던 것처럼 코로나 팬더믹 이후에는 공중 보건으로 관심이 이동할 것으로 예측한다. 코로나19사태는 그동안 현대사회가 공중보건에 대해 얼마나 미지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는데도 클럽, 술집 들이 성행하는 현상들, 교회와 같은 모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집단 감염 등의 안타까운 상황들이 또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공중보건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할 것이다.
셋째, 의료시스템의 디지털전환이 가속화 될 것이다. 의료시스템이 환자관리에서 건강관리로 전환됨에 따라 건강데이터의 수집 및 공유가 중요해질 것이며, 비대면 생활패턴이 증가하는 “뉴노멀”사회의 등장에 따라 원격진료와 같은 온라인 도구에 대한 규제가 완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병원 방문이 감소하고, 개인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이미 일시적으로 전화 상담 및 처방이 도입되고 있다. 온라인 의료정보관리와 공유만 허용된다면 이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실시간으로 생체정보를 측정 및 분석하는 것, AI를 기반으로 실시간 질병진단을하는 것 등 의료시스템의 자동화와 인공지능화를 통한 자가진단까지 가능할 수 있다. 이때 이러한 의료정보가환자의 1차병원 주치의에게 바로 공유될 수 있다면 진정한 디지털 진료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것은 헬스케어 산업의 확대와 바이오헬스 시장의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의미하며, 전과 다른 형태의 혁신이 촉망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에 있어서 의료인의 결정이 의료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에서 유발 하라리는 현재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세계가 지금 혹은 앞으로 몇주 안에 내리게 될 결정이 향후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삶을 형성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정이 빠르게 내려지고 임시적 조치는 대게 위기가 종료된 후에도 지속되기 때문에,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 눈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것 뿐만이 아닌 그와 함께 따라오게 될 장기적 결과 또한 생각하며 선택해야 한다고했다. 현재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확진검사,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소독 및 방역 등이 이제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언택트”, “뉴노멀” 사회를 조성한 것 처럼, 앞으로 치료제가 없는 전염병에 있어서 환자와 사회는 전문가인 의료인에게 해결방안에 대해 기대할 것이고 이때의 의료인의 의견과 선택은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이것은 의료인에게 특히 어려운 과제이겠지만 동시에 의사의 사명이자 의무로써 올바른 결정을 향해 나아갈수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의사 리유는 페스트가 종식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은 다만 공포와 그 공포가 가지고 있는 악착같은 무기에 대항하여 수행해나가야 했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해나가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이처럼 이미 일어난 상황은 어쩔수 없지만,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변화하고 준비한다면 우리는 분명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