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1):팔레트(Palette)

코로나19 의대생 글쓰기 공모전 수상작(에세이 부문)

'우리협회는 COVID-19 확산 여파로 장기적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의대생들에게 미친 영향을 직접 들어보고자 'KAMC 코로나19 의대생 에세이 공모전'을 시행하였습니다. 이에 지난 7월 선정된 우수작을 선보입니다.'

우수상(1) 김민석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작품명: 팔레트(Palette)

우리는 일순간에 자유를 잃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 위기 경보 ‘심각’ 단계,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말들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압박감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필요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밖을 나가는 것이 제한되었고, 모임, 행사, 축제, 공연 등 모든 단체 활동들이 중단되었다. 여행은 고사하고 집 근처에서 외식하는 것조차 위험한 행위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생이기에 학교를 다니며 수업을 듣고 학교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겨울 방학에 시간이 되어 가족여행으로 미국을 다녀왔다. 여행을 하면서 세계적으로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조금씩 불안해졌다. 2월 7일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마스크를 쓰고 손세정제로 손을 수시로 닦으며 집으로 돌아왔고, 2주간 자가 격리를 했다. 돌아오자마자 2월 9일 떠나기로 했던 싱가포르 여행을 모두 취소했다. 그리고 외출은 최대한 자제했다. 하더라도 마스크를 꼭 쓰고 손 세정제로 손을 수시로 닦았다. 그 외의 시간에는 면역력을 잃지 않기 위해 건강한 식단 위주로 밥을 먹고 집에서 간단한 운동을 했다. 2월 17일로 예정되었던 개강은 일주일 뒤인 24일로 미뤄졌다.

우리나라가 ‘심각’ 단계가 되기 전이었기에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에서 확진자는 전국 단위로 어디서 몇 명이 발생했는지 알게 될 정도로 적었다. 첫 완치자도 나왔다. 그래서 모두 조금 지나지 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믿었다. 또 이전의 전염병들과 같이 백신, 치료제가 곧 개발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아무리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더라도,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고 움직여야 했다. 또 세계가 돌아가기 위해서 누군가는 밖을 나서야 했고, 의료진들은 전보다 더 복잡해지고 바빠졌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행동이지만 더 큰 대의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고,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위험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간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믿음 하에 밖을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활력을 잃고 기분이 다운되어버린 나머지 어떤 사람들은 에너지를 얻고자 사람들을 만나고 붐비는 장소를 향했다. 어떤 사람들은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신앙에 마음을 기대었다. 모두가 밖을 안 나설 수는 없었지만 전염병 확산 예방을 위해 불필요해 보이는 외출들이 모여, 확진자 수가 줄어들다가도 어느 순간 확 늘어나기를 반복했다. 첫 사망자가 나왔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발생하고 멈추지 않다보니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백 단위의 사망자와 만 단위의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이제 더 이상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와, 사망자 수에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어느 새 우리는 의식할 틈도 없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생활이 익숙해져 이전에 우리는 어떻게 생활했었는지 마음속에서 잊히고 있다. 학교는 대면 강의를 계속 연기했고 결국 1학기 전면 사이버강의가 진행되었다. 커리큘럼 상 진행되어야만 하는 시험과 실습은 과제와 사이버 강의로 대체되기도 했다. 우리 과는 실습 기간을 정해 매번 문진을 작성하고 열을 체크하며 실습을 진행했다. 시험도 시험 기간을 정하여 대강당에서 떨어져 앉아 대면 시험을 치렀다. 학교생활을 하는 것처럼 일정 기간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이번 1학기를 보내면서 정말 힘들었다. 코로나 19(이하 코로나)가 퍼지면서 바뀐 전면 사이버 강의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학생이었지만 내가 학생이라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학교 대신 내 방 책상에 앉았다. 주변에는 교수님과 친구들 대신 노트북 화면과 벽이 있었고 수업을 듣고 나면 검은 노트북 화면으로 오롯이 혼자 남은 내 모습이 보였다. 화면 너머로 소통하고 있었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녹화된 수업은 학생들과 호흡을 맞춰 나가는 것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순서에 맞게 제공하는 것에 초점이 되어 있어 중간중간 쉬어가는 시간이 없기에 본 수업보다 길이는 짧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여러 번 듣거나 더 찾아보면서 원래 수업시간과 비슷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올라오는 수업을 듣고 출석 과제를 했다. 혼자서 주변의 변화 없이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하루하루 업무를 처리하는 기계같이 느껴졌다.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실습이 잠정적으로 연기되면서 남는 시간이 조금 늘어났고, 나는 점점 더 무기력해졌고 내 안에 우물을 깊게 파고들어 갔다. 내가 하는 외출이라고는 운동을 할 겸 아침에 바깥을 돌다가 그네에 앉아 다가오는 햇살을 잠깐 맞이하는 것이 다였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마음이 계속 무언가에 짓눌리는 기분이었고 우울해졌다. 감정들이 계속 나를 집어삼켰고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다 내려놓을 수는 없기에 악을 쓰며 버텼다. 그러는 와중에도 흘러가는 시간은 너무나 야속했다.

본과 1학년이 되니 해야 할 학업의 양이 예과 때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 그래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1학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어떻게든 버텼다. 하지만 주변에 묵묵히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고, 끝없는 자기혐오에 빠졌다. 그 속을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나를 조여 오는 생각들과 시험들은 빠져나올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모든 시험 일정이 끝난 지금까지 오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이제 와서 내가 버텨오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고통뿐이었다. 그래도 그 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코로나가 등장한 이후로 누군가는 감정적으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기 할 일을 해나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내면을 되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며, 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의 소중함을 알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별을 경험한 사람도 있는 반면 새로운 만남을 경험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똑같이 반응하는 사람은 없다. 각자 자기가 살아오고, 배우고, 느끼는 대로 반응한다. 그중에는 정답도 없고 실패도 없다. 그 누가 그렇게 너 멋대로 하면 안 된다고 할 자격도 없다. 겉으로 보이기에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없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소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고, 누군가는 이렇게 새롭고 낯선 상황을 기회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기에 같은 상황 속에서 다르게 느끼고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이다.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 조심해야 하는 상황은 맞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조심해야 할 것이 늘어난 상황에서 우리는 예민해지고 날이 서기 쉽다. 그렇기에 조금 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싸우고 이겨내야 할 것은 코로나지, 코로나로 인해 무너진 우리가 아니다.

코로나에 대한 확실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타나지 않아, 쉽게 종식되고 마무리될 것 같지 않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익숙해져 조금씩 이겨내고 있다. 모로가도 도로가도 길은 있기에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또 우리에 맞게 각자의 독창성을 발휘하여 각자의 길을 걸을 것이다. 자기의 방식에 맞게 느린 사람은 느린 대로 빠른 사람은 빠른 대로, 저기로 가고 싶은 사람은 저기로 여기로 가고 싶은 사람은 여기로 갈 것이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팔레트에 물감을 짠다.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전에 어떤 색으로 작품을 완성할지 고민하며 팔레트에 물감을 담는다. 그리고 붓으로 물감을 찍어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러면서 필요한 색깔을 추가하기도 하고 없는 색깔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인생은 그림이다. ‘인생’이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우리는 팔레트에 여러 경험을 채워나간다. 코로나는 이전에는 채울 수 없던 물감이다.

너무 색조가 강한 색이어서 다른 색을 쓰지 못하게 되었지만, 새로운 색깔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보자. 지금 가진 색깔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 보면 언젠가 코로나보다 강한 색이 나타나, 그것으로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