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2):변화의 시작

코로나19 의대생 글쓰기 공모전 수상작(에세이 부문)

'우리협회는 COVID-19 확산 여파로 장기적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의대생들에게 미친 영향을 직접 들어보고자 'KAMC 코로나19 의대생 에세이 공모전'을 시행하였습니다. 이에 지난 7월 선정된 우수작을 선보입니다.'

우수상(2) 박소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 작품명: 변화의 시작

‘언택트(Un-contact, 비대면)’의 시대가 도래했다. COVID-19는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외출 할 때 지갑은 안 챙겨도 휴대폰은 챙기던 시대에서, 이제는 마스크부터 챙긴다. 어디를 가든 출입문 앞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마스크 없으면 출입 불가’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아니 6개월 전만 해도 상상이나 했을까? 말 그대로 ‘뉴노멀(새로운 표준)’인 것이다.

나의 일상을 보자. 일어나서 졸린 눈을 비비며 씻는다. 평소 같으면 아침은 건너뛰고 10분이라도 더 자겠지만, 면역력이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먹는다. 이제 외출이다. 아차! 마스크 안 챙겼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미세먼지 심할 때 간간히 마스크 꼈을 때는 끼기만 해도 숨쉬기가 힘들도 죽겠던데. 이제는 매일 마스크를 끼니까 숨은 잘 쉴 수 있다. 적응해 버린 이 현실이 참 슬프다. 이제 여름이 되고나니 마스크도 영 답답하고 땀이 차서 불편하다. 피부도 늘 빨갛고 뭐가 난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생활하다보니 덴탈 마스크보다 kf94마스크를 끼게 되는데, 더운 날에는 숨쉬기도 힘들다. 이번 여름은 엄청나게 더울 거라고 하던데 벌써 걱정이다.

병원입구에 도착하니 커다란 천막에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있다. 이상하지만 일상적인 풍경이다. 음. 오늘도 다행히 열 안 나고 무사통과다. 이크! 누가 뜨거운 음식을 가지고 입장했나보다. 열 감지기가 울렸다. 예전에는 저런 열 감지기를 고기 집에서나 봤는데…….

회진은 셀프스터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교수님께서 해주시는 티칭(강의)도 마찬가지다. 물론 예진도 없어졌다. 예진하면서 CPX 훈련도 되고, 스스로 부족한 점도 알아낼 수 있던 좋은 기회였는데 없어져서 아쉬울 따름이다. 수술도 참관은 못하고 인터넷강의에 올라온 영상으로 본다. 멍하니 동영상만 보려니 졸려서 그런지, 자꾸 틀어놓고 딴 짓 만 하게 된다. 친구는 수술 참관은 가능하다던데, 들어보니 그놈의 마스크가 문제란다. COVID-19 때문에 마스크 확보가 어려워,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개수 제한이 있다고 써놓은 안내문이 부착되기도 한단다.

외래 참관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한 번에 한명의 학생만 외래 참관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 명당 한 시간 정도 밖에 외래 참관을 못하게 된다. 이제 뭔지 좀 감을 잡을 만하면 참관 시간이 다 돼서 나가야한다. 아쉽다. 또 서로 교대하는 시간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때도 서로 접촉하거나 말하는 건 금지다.

각자 배정된 일정이 끝나면 병원에 남아있지 말고 근처로 흩어져야 한다. 학교 휴게실도 많은 곳이 폐쇄되었다. 이렇게 되니까 일정에 따라 같은 조 친구를 일주일동안 한 번도 못 볼 때도 있다. 같은 조가 맞긴 한건지 의문이 든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잘 살고 있니?
일주일 단위의 실습에서 COVID-19 때매 늘어난 인터넷강의와 과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보면 정신차려보면 케이스 준비를 해야 하는 때가 온다. 큰일이다. COVID-19 때문에 실습 많은 것이 바뀌어 혼란스럽지만, 케이스가 가장 문제다. COVID-19 이전 이였으면 회진이나 외래에서 충분히 사례를 보았겠지만, COVID-19 이후에는 환자와 접촉하는걸 지양해야해서, 의무기록만 보고 케이스를 해야 한다. 의무기록만 보고는 잘 모르겠다. 교과서를 찾아봐도 글자로만 적혀있으니 잘 감이 안 잡힌다. 직접 환자에게 문진하면 얻는 정보도 많고 기억에도 훨씬 잘 남는데 참 아쉽다.

케이스 발표를 비롯해서 많은 발표들이 다 동영상으로 제출 또는 실시간 화상발표로 바뀌었다. 뉴스를 보면 요즘은 시험도, 면접도 화상으로 한다는데 정말 신기한 세상이다. 예전에는 저런 방법들이 낯설고 미래의 기술 같았는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녹아들었다.

실습 일정이 끝나고, 친구들과 저녁이라도 먹고 싶지만 왠지 찝찝해서 집에 가서 먹으려고 한다. 집밥은 이제 지겹다. 멀리 맛집이라고 알려진 곳에 외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연이어 오는 재난문자를 보며 참는다. 하루에 재난문자가 몇 건이나 오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친구가 연락이 왔다. 우리 언제 만날 수 있냐고. 미안…….COVID-19 종식되고 나면 만나자. 몇 개월간 친구도 못 만나고 얼굴도 까먹을 지경이다. 날씨도 맑고 좋은데 실내에만 있으려니 죽겠다. 여행도 가고 싶다. 이번 방학에는 COVID-19가 종식되어 놀러갈수 있을까? 스트레스 받을 때 유일한 해소법이 노래방 이였는데 이제 그것도 못한다. 정말 답답하다. 운동도 못하고 살만 찌는 것 같고…….그 유명한 ‘COVID-19 블루’에 걸린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비치된 손소독제로 소독을 하고 거울을 보니 ‘대화 금지’라고 써져있다. 그래, 다들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집에 오자마자 엄마가 손 씻었냐고 물어본다. COVID-19 때문일까, 혹은 덕분일까. 다들 위생에 부쩍 신경 쓰게 된 것 같다. 자기 전에 유튜브나 게임을 하면서 쉬어야지. 밖에 못나가니까, 요즘은 이런 것들이 대세다. 모 게임기가 불티나게 팔렸다는데. 내일 종강 회의도 그냥 카톡으로 한다는데. 정말 신기하다. 일생생활 뿐만 아니라 학업까지, 아침부터 잘 때 까지 COVID-19는 나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포스트 COVID-19’시대와 그 이전은 완전히 다르다.
특히나 의료 부분은 더 그럴 것이다. 의대 교육과 병원은 모든 것이 ‘대면’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COVID-19에 가장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본과 3,4학년은 실습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일정 부분은 대면으로 할 수 밖에 없지만, 본과 1,2 학년은 수업으로 진행되는 터라 대부분 사이버 강의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대면 시험도 지양하는 추세라 시험도 한 학기 분량을 통으로 한 번에 시험 본다고 한다. 심지어 본과 1학년은 해부 실습을 몰아서 진행한다. 해부 같은 경우에는 공부한 것을 바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비로소 정리되는데,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머릿속에 잘 남아있을지 의문과 걱정이 든다.

그렇다면 COVID-19 시대 이후에 무엇이 어떻게 바뀌게 될까?
무엇보다 급격하게 성장 중인 4차 산업 기술, 예를 들어 5G·AR(증강현실)·MR(혼합현실)·AI(인공지능) 등이 의료 분야에 적용될 것이라 생각한다. 기존에 IT분야는 꾸준히 발전해 왔지만, 현실의 필요성이 적었기 때문에 대중화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COVID-19 이후 비대면에서 기존 방식으로의 한계가 드러났고, 이러한 기술이 날개 돋친 듯 주목받고 있다.

특히나 의대 교육에서 비대면은 큰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했듯이 본과 1학년에서 해부 실습은 아주 중요하다. 직접 눈으로 경험 하는 것과 단지 책으로만 공부하는 것은 큰 차이를 가진다. AR 기술을 적용해서 눈앞에서 인체의 구조를 보고, 특정 구조를 선택하고, 분해해 본다면? 해부 실습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책만 보고 공부하는 것 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고, 많은 학교들이 이와 같은 학습 과정을 보조로 사용하고 있다. 3.4학년 실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회진과 예진 등 환자를 접촉할 기회가 많이 사라졌다. COVID-19가 지속된다면, 혹은 재유행이 된다면 운이 없는 학생은 실습 기간 동안 환자를 거의 접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학생 때 케이스를 접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MR(혼합현실) 기술로 질환 별로 대표적인 케이스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존재하며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고, 대중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수련 과정에서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COVID-19를 떠나서 수련 과정에서 직접 환자에게 술기를 시행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이 경우 모두 비대면 상황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나 교육 분야는 기존의 방식과 다른 방식이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비대면의 한계를 제외하더라도 4차 산업의 도입은 예정된 흐름이다. 이러한 새로운 물결이 도입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또한 기존의 전통적인 의사의 의료 범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분야가 개척 될 수도 있다. 이미 비대면 진료라는 이슈가 제기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과거와는 다르게 비대면 진료를 더 이상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운 현실에 봉착하였다. 이러한 비대면 진료라는 것이 화상 진료인지, 전화 진료인지, 메신저 진료일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해외·타 직종의 사례를 바탕으로 약간의 안타까운 상상을 더해본다면, 미래에는 메신저로 의료 상담을 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미 0닥 등 여러 의료 관련 휴대폰 프로그램 등으로 병원의 실시간 예약뿐만 아니라 특정 의사를 지정해서 예약하기도 한다. 규제로 막혀 있을 뿐이지,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다면 어플리케이션에 매신저 기능 하나 넣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이미 레드오션인 의료 시장에, 비대면 진료라는 분야의 경쟁이 펼쳐질 지도 모른다. 해외에서는 1차 진료의가 보편적인 경우가 많다. 환자가 처음으로 접하는 이러한 1차 진료의의 경우 접근성이 쉬운 비대면 진료에 많이 노출 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의원·병원에서는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할 것이고, 혹은 따로 병원을 차리지 않고 비대면 진료만 하는 프리랜서 의사가 생기거나, 비대면 진료를 위해서 의사와 환자를 연결해주는 중간 산업이 발달할 수 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에이, 설마’하고 과거와 현실에만 안주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미래를 대비하듯이, 변화하는 이 시대에서 늘 열린 마음을 가지고 대비를 해야 한다.
COVID-19는 계기일 뿐이다. 큰 변화가 시작되는 계기. 확실한건 COVID-19가 종료되어도, 그 이전의 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변화를 수용하며,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변화가 적고 탄력적이지 못한 의료계에서는 작은 바람이라고 무시하며 과거의 것만 생각해서는 후에 큰 태풍에 흔들려 혼란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곧 학생 신분을 마감하는 예비 의료인으로서, 늘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이것은 의대생 모두가 그럴 것이다. 기존에 잘 알려진 AI(인공지능)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COVID-19가 발생했다.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또한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아마 다들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COVID-19 의대생 에세이 공모전을 만든 이유는, 스스로 고민해 보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고민을 한 것과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은 확실하게 다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