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미래의 나. 이제는 하얀 가운 가슴팍에 ‘의과대학생’이 아닌 ‘의사’가 쓰여있을 나에게, 병원에서 막 실습을 돌기 시작한 지 겨우 1년이 다 되어가는 내가 편지를 써. 나보다 나이도 많고, 그만큼 아는 것도 많겠지만, 그래봤자 또 다른 ‘나’이기에, 편히 쓸게.
예과 때는 전혀 몰랐던 세상이 본과에 올라오면서 펼쳐지고, 그게 전부였던 줄 알았던 것이 실습을 돌기 시작하면서 또 새롭게 다가왔지. 어쩌면 의사가 된 너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 보듯이 기억 저편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도 좋아. 그만큼 내가 지금보다 더 성장했고, 우물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는 뜻일 테니까. 하지만 그런 바쁜 생활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느라고, 과거에 겪었던 몇 가지 중요한 경험들과 내가 느낀 감정들을 놓쳐 버리진 않았을까? 혹시 너도 모르게 우물 속에 두고 가버렸을까 봐, 내가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들을 골라 이 글 속에 소중히 담아서 나에게 다시 보내.
예과를 마치고 본과에 올라와서 겪었던 일들부터 얘기를 시작해볼까? 힘든 입시를 겪어서 의대에 온 만큼, 아무리 힘든 공부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많은 본과 공부량을 마주했지. 난 내 나름대로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시험 전날만 되면 아직도 한참 남은 강의록과 기출문제를 붙잡고 정말 말 그대로 울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어. 시험지를 받고서는 답을 모르는 문제들에 좌절하고, 객관식만 내시던 교수님께서 내신 주관식, 서술형 문항에 오열하고. 하나의 시험이 끝나면 바로 또 다음 시험 기간이 시작되었지. 그렇게 힘들게 유급을 피해서 한 학기 한 학기 올라왔어. 지금의 너도 예전 못지않은 바쁜 삶을 살고 있겠지만, 의사가 된 나의 모습을 꿈꾸며 힘든 공부를 버틴 20대의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네게 작은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처음 해부학 실습실에서 시신 기증자 앞에 섰을 때의 그 떨리는 가슴을,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죽은 사람을 마주하고 있다는 소름 끼치는 사실과 그런 나의 불안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 소리도 없이 누워 계셨던 어떤 할머니 시신. 동기들과 다 같이 묵념하는 사이에서,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도 이렇게 누워계실까, 남몰래 떠올렸던 생각. 그렇게 주저하며 실습을 시작했지만, 몇 주가 지나자 나는 어느새 익숙하게 혈관과 신경들을 박리해내며 장기들을 만지고 있었지. 사람의 몸 안을 직접 보고 만진다는 것이 신기해서, 마지막 실습 날 나는 꼭 수술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예과 때는 생각도 못 했던 나의 진로에 내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놀랐었는데, 과연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는 계속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의사가 되었을지 궁금하네. 혹시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전환점을 지나 다른 진로로 나아갔을지라도, 그때 해부학 실습실 안에서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기증해 주신 분에게 감사한 마음은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는 의사가 되기를 바라.
있지, 병원 실습 1년 동안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께서 가장 자주 하셨던 질문은 ‘어떤 과를 가고 싶니?’ 였어. 그리고 네 대답은 항상 ‘잘 모르겠습니다.’였지.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가끔 ‘실습 돌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게 뭐였니?’라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몇 가지를 꼽을 수 있었어.
첫 번째는 산부인과 실습을 돌 때 봤었던 제왕절개. 태반의 위치 때문에 수술을 받게 된 산모가 누워 있었고,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 그리고 인턴 선생님과 너까지 넷이서 환자 옆에 서 있었지. 불룩 솟은 배 밑으로 절개를 해서 들어간 곳에서는 조금 있으니 까만 무언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양수가 왈칵 나오며 아기가 불쑥 튀어나왔어. 아아. 아기는 내 생각과 달리 어두운 푸른 빛을 띠고 있었고, 피부도 지저분해 보였어.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탯줄을 자르게 시키셨지만, 내가 너무 놀라 아무것도 못 하고 있자 옆에 계시던 인턴 선생님께서 잘라주셨네. 간호사 선생님께서 받아 가신 아기는 조금 후에 옆 테이블에서 큰소리로 울음을 외쳤는데, 2020년에 태어난 어떤 삶의 시작을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고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어.
두 번째는 응급실 실습을 돌 때. 나는 중증도 분류를 하는 트리아제에서 참관 중이었는데, 갑자기 공사장에서 커다란 기둥에 깔려 쓰러져 있었다는 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왔어.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부목으로 고정은 해두었지만, 환자는 계속 움찔거렸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 바로 소생실로 들어가 눕히고, 내 인생 첫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 내가 본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하면 환자가 살아나던데, 오히려 점점 움직임이 없어져 갔던 환자. 전공의 선생님의 사망 선언과 함께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약간이나마 움직이던 사람이 내 앞에서 이 세상을 떠난다는 건 슬픔을 넘어서 너무나 어색한 경험이었고, 그래서 섬뜩했어.
어떤 사람의 시작과 끝을 본 경험에 이어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그 중간에 있는 순간이었어. 이식 혈관 외과를 돌던 중, 뇌사자가 발생하게 되었고 장기기증을 하기로 한 그 뇌사자는 우리 학교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어. 일과 시간이 끝나고 나서 시작된 수술이었지만, 교수님의 허락을 받고 참관을 하게 되었고, 수술실에서 나는 또 다른 충격을 마주했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얼굴 밑으로 가슴과 배가 활짝 열린 채, 나라에서 지정한 각 병원에서 장기들을 – 세상에, 심장이랑 폐가 그렇게 클 줄이야 – 꺼내는데 이미 숨을 쉬지 않는 환자지만, 기분이 이상하더라. 텅 비어버린 육신의 껍데기와 밖으로 옮겨진 장기들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가 다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도, 글로 읽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니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
10년 후 의사가 된 너는 어때? 지금 네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떤 환자일까? 내가 마주한 삶과 죽음에 대한 느낌이 아직도 네게 인상적으로 남아있을까? 어쩌면 오랜 의사 생활에, 이제는 이런 삶과 죽음에 대한 경험이 무덤덤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10년 전의 너는, 영혼이 몸에 들어오고 나가는 순간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그러한 과정 사이에 참여하는 의사로서의 삶을 바랐음을 기억하기를. 그리고 그러한 의사가 되었기를.
글을 쓰고 있는 2020년은 학교 밖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던 시간이었어. 올 한해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1년 내내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헷갈리지 않게 COVID-19라고 명시해줘야 하려나. 상상하기도 싫지만, 10년 사이에 또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할 수도 있으니까) 여름에는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여 대규모 파업이 일어나서 학생들까지 실습을 중단하는 일이 벌어졌지. 과연 여기 의대라는 우물 밖으로 나간 후의 세상은 지금과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너무나 궁금해. 그리고 그곳으로 나간 너는 과연 어떠한 의사가 되어있을지. 만약 주변 환경이 너를 힘들게 한다고 하거나, 너 스스로 의학도로서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나의 이 편지를 읽고 느끼기를 바라. 너는, 그리고 나는 첫 의학에 발을 들인 몇 년 동안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가지고 의사로서의 삶을 꿈꿔 왔다는 것을. 그런 고민 속에서도 결국 너처럼 환자를 보는 좋은 의사가 된 걸 보면, 네가 지금 하는 고민도 결국 모두 또 다른 10년 후의 나를 만들어 성장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10년 전의 내가 응원하고, 10년 후에 응원받기 부끄럽지 않도록 더 열심히 노력할게. 안녕, 미래의 의사 선생님.